이러한 사회적 제약이 성립된 후의 조선시대 여성은 일반적으로 방갓을 쓰거나 장옷을 입고 얼굴만 조금 내민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모든 여성이 집안일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농민과 하층민의 부녀자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가릴 것도 없었다. 오히려 19세기가 되면 영남의 일부와 관북지방에서는 여자가 장터에 나가 상인과 상대하며 흥정을 벌였다. 특히 관북의 여성은 목축과 밭일을 남자 이상으로 하였다.
이것은 제주도의 여성이 바다에 나가 일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삶의 터전이 척박한 곳의 일반적 현상이었다.
18세기 이후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민중의 생활상을 그려낸 풍속화를 중심으로 조선 여성들의 생생한 삶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여인네들이 사진 촬영을 꺼려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에 의해 촬영되어 대부분의 자료가 국외에 소장되어 있다는 시대적 특수성에 의해 빚어진 매우 귀한 자료입니다. 는 16세기 이후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여성을 삽화를 통해 살펴봄으로 우리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항아리 이고 가는 촌부 1900년대
이완용의 부인 (1880년대)
명성황후 1890년대
조선여인의 전통복장 1890년대
1890년대초창기의 이화학당 학생들
한국 여인1895-1901년
가족사진1900년대
결혼 예복을 입은 신부 1902-1903년
귀족 1900년대
기생을 지도하는 여인 1900년대
양반댁 여자아이
왕실 여인 1900
윤비(순종비)와 궁중 여인들1900년대
이화학당의 소풍행렬 1908년
일반 부녀자의 모습 1900년대
일본 장교와 두 기녀 1901
젖가슴을 드러낸 기생 1900년대
중산층 가족사진
신식결혼 1910년대
이화학당 졸업생들 1911년
조선회화: 달구경 '경직도 병풍' 중에서19세기 이후
서양인이 그림 조선여인"널뛰기
색동 겨울옷
조선여인의 식사
조선여인들의 빨래
죄 지은 여인의 매질 '행정도첩 (刑政圖帖)' 중에서19세기 말 작품
단오추천 '기산풍속화첩 (箕山風俗畵帖)' 중에서 19세기 작품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행상 '풍속화첩 (風俗畵帖)' 중에서
다림질 19세기 초 작품
춘야밀회 (春夜密會) 19세기
기방무사 (妓房無事) '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조선회화: 청금상연 (聽琴賞蓮)'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여인풍속 (女人風俗) 18세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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