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실장이 주장한 소득주도성장을 평가하자면.
▷성장하려면 노동, 자본, 생산성 등 세 가지를 향상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소득을 올려서 성장을 하겠다는 것으로 경제학적으로 보면 단기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론이다.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왔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주말에 황수경 통계청장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전직 통계청장으로서 어떤 생각인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경질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 통계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통계청은 독립성과 신뢰가 생명이다.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진 가계동향 통계는 개선되기 위한 변화의 과정 속에 있었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아야 한다. 통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통계청장을 경질하면 야당이 앞으로 통계를 조작한다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청와대에 올바른 경제정책 방향을 조언한다면.
▷우리는 매우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 당장 청년들 일자리도 필요하지만 미래 일자리를 고민해야 한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가장 직격탄을 맞을 나라가 한국이다. 변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 같은 차원에서 소득주도성장에 목숨을 걸 게 아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진단하자면.
▷소비·투자·심리·고용 등 여러 지표가 나쁘다. 구조조정이 미진하고, 수출도 반도체에 쏠려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 정부가 회복하기 위해 재정을 풀고 있다. 한마디로 `회색 코뿔소` 상황이다. 터키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위기가 상존해 있는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터지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상황에 있다.
―위기가 어디서 어떻게 터질 것으로 예상하나.
▷우려하는 곳보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 우리 내부에서 위기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모순되는 제도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제도로 인해 내부적으로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부처이기주의다. 과거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이 조금만 불편하면 몇만 약사가 먹고산다"고 말했을 정도다.
―부처이기주의 못지않게 기득권 세력도 문제 아닌가.
▷그렇다. 사실 기득권 세력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기득권이 의료인 등 전문가 집단에 한정된 게 아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청와대 일부 세력들도 기득권화돼 있다. 청와대가 큰 프레임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문재인정부의 성장과 분배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노무현정부 데자뷔다. 문재인정부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장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없다. 성장 그러면 보수 꼴통의 콘셉트라는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성장을 해야 나눠 가질 수 있다. 성장하려면 노동 자본 기술이 필요한데, 노동에 대한 기본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는 1차 산업혁명 때 처음 나온 말이다. 그게 지금까지 왔다. 과거에는 사주와 노동자 관계를 종속·착취의 관계로 보고 노동자는 보호의 대상으로 봤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 노동 개념을 바탕으로 한 게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이다.
―정부가 분배 개선을 위해 예산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는데.
▷재정 전문가들은 거의 다 재정건전성을 염려하고 있다. 돈 쓰면 나아진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목에 찬 상황이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순위가 높다고 하지만 재정학자들이 경제 발전 단계와 고령화를 감안하면 OECD 중간 정도지,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뒤돌아보면 효과가 미미한 재정을 많이 투입했다. 대표적인 게 출산율이다. 처절한 반성을 해야 한다. 왜 실패했는지 따져보고 보완해야 한다. 무조건 지출 확대로 가면 안 된다. 연금 정책도 사전검사를 해야 할 때가 왔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한국 경제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경제 체제의 변화가 오고 있다. 전쟁만 없을 뿐이지 대전환기에 들어섰는데, 최저임금 인상 등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국은 변화의 흐름을 읽고 포지션을 잘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민하는 정부 기관이 없다. 예전엔 경제기획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살아남으려면 최저임금 말고 진짜 고민을 해야 한다. 핀란드는 미래부를 만들어서 미래 전략을 짜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 조세로 분배 ?…비효율만 낳는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주요 원인은 예상보다 더 줄어든 투자다. 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 이유는.
▷과거 어느 때보다 기업가정신을 이렇게 홀대한 적이 없었다. 또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고용비용이 너무 올랐다. 주위에 빚도 안 지고 중소기업을 해온 분이 국내 노동 환경이 너무 나빠져서 베트남으로 옮길 거라고 하더라.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게 됐다.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 정책으로 자영업자가 너무 힘들어졌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자영업자는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나라는 산업 사이클이 다른 나라보다 빠르고, 퇴직을 너무 빨리 한다. 나아지려면 산업구조가 변환돼야 한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이 아니더라도 정보기술(IT) 등으로 빨리 해야 하는데 못했다. 정부는 환상을 심어주면 안 된다. 청와대에 자영업 담당 비서관을 신설한다고 자영업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럼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 성형수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의료, 법률, 관광 등 서비스를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제학자로서 바람직한 경협 접근법은.
▷남북은 70년을 떨어져 있었다. 경제가 너무나 달라졌다. 그래서 정밀하고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가 철도사업을 발표했는데, 철도를 까는 것 자체만 볼 게 아니라 어떻게 수익을 뽑아낼 건지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철도나 사회간접자본(SOC)을 깔았다가 수익성이 없는 경우가 종종 나왔다. 북한 노동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가 탈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생산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정부는 남북 경협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해도 오히려 서울 집값은 잡히지 않는데.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국민이 정부보다 더 똑똑하다. 정부는 단 한 번도 부동산 정책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 시장에 맡겨야 할 일이다. 과거 정부에서 세금을 가지고 집값을 잡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절대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다.
―부자증세도 논란이었는데.
▷조세는 분배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 가격을 건드리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더 크다. 보편적 조세를 한 후 형평은 재정으로 해야 한다. 형평을 고민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조세로 하지 말자는 말이다. 법인세(인상)도 마찬가지다. 거대 법인에 세금을 부과하면 자본가든 노동자든 소비자든 누구에겐가 귀착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중국은 이기기 어렵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미국을 앞섰지만 잠재력을 감안했을 때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또 중국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소수민족 문제, 도농 간 갈등, 빈부 격차, 그림자금융 등이 그것이다.
■ 이인실 차기 회장은…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연세대 지질학과 졸업 △1981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91년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1992년 하나경제연구소 금융조사팀장 △1999년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2004년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2006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2009년 통계청장 △2017년 한국경제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