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16억원짜리 시계에 다이아몬드는 없다

울산 금수강산 2006. 10. 25. 11:36

16억원짜리 시계에 다이아몬드는 없다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5,000원짜리 시계도 시간이 잘 맞는데, 도대체 한개에 16억원이라는 손목시계는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그 시계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한 스위스대사관의 후원으로 청담동 와이트월 갤러리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자신의 시계전시회에 맞추어 내한한 스위스의 안트완 프레지우소(48)는 ‘시계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며, 필립 뒤포와 함께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캐비노티에(cabinotier, 시계장인)다. 여기엔 웬만한 중형아파트 몇채값에 맞먹는 16억원짜리 손목시계 ‘트리볼루션’을 비롯해 수천만~수억원을 호가하는 시계 26점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그 16억원짜리 시계에는 다이아몬드 하나 달려있지 않았다. 백금으로 된 시계는 손목에 차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는데, 그 이유는 가운데에 세개나 되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계제작기술의 최고 경지라 일컬어지는 트루비옹 시스템이다.

“시계는 중력 때문에 어느 정도 미세한 오차가 나는데, 이 시스템은 그 오차마저 스스로 교정하면서 돌아가는 겁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것은 사실 시계 가격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건전지 없이 태엽과 흔들리는 동작만으로 움직이는 시계의 부품 수백개를 모두 그가 일일이 손으로 깎고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제네바에 있는 그의 공방에는 50~100년된 크고 작은 시계공구 수백개가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조립할 때는 숨소리조차 멈춰야 할 정도로 세밀함이 요구된다. NHK에서 2002년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미세한 흔들림을 없애기 위해 입으로 책상 모서리를 물고 작업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롤렉스에서 시계를 만드셨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가져온 시계를 분해해서 조립해 보곤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계와 친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도 100~200년된 시계들을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 보는 게 제일 좋아하는 일입니다. 브레게와 동시대인 150여년전 캐비노티에인 안티드 장 피엘의 작품을 제일 좋아합니다.”

연간 30명 안팎의 스위스인에 한해서만 입학이 허용되는 제네바 시계학교를 최고 성적으로 졸업한 후 파텍필립에 입사했다가 1981년 자신의 공방을 열었다. 이후 브레게, 해리 윈스턴, 파텍필립 등
명품시계회사들의 시계를 디자인해 주면서 캐비노티에의 명성을 쌓았다. 25년간 그가 직접 만든 시계는 150여개밖에 안된다.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만 시계를 만들어요. 또한 장소나 도구도 가장 정결하게 해놓아야 하구요. 어떠한 잡티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주로 새벽이나 밤에 작업에 들어갑니다.”

마치 조선시대 도공처럼 시계제작을 하는 그는 한국인들이 시계의 예술성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