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백두산

울산 금수강산 2006. 10. 26. 18:02

산행은 소천지-차일봉-녹명봉-백운봉-꽃밭-한허계곡-청석봉-돌길-마천우-주차장까지 천지물가 5개의 봉우리를 이어가는 서파 외륜 트레킹이다. 중국말로 '파'는 '언덕'이란 뜻이다.

2시 30분. 백두산 천지 외륜 트레킹은 소천지에서 시작된다. 소천지 입구로 들어서 랜턴으로 어두움을 밀어내며 돌 박힌 포장길을 5분 정도 진행하자 길 왼쪽에 장백호수(소천지)와 오른쪽에 무슨 제단 같은 것이 보이고 주위는 어두움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이 좁아지고 서서히 오르막길이다. 사스래나무 숲을 지나자 하늘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자작나무류 중에서도 사스래나무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활엽수이다. 재킷을 꺼내 입고 장갑을 낀다. 랜턴 불빛에 놀란 야생화가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소천지에서 약 1시간. 두 줄기 옥벽폭포가 눈에 들어오고 옥벽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세찬 물소리와 함께 계곡으로 흐른다.

어둠 속에서 오른쪽 산 중턱에 희끗희끗 보이는 것은 눈이 아니라 암석지대다. 어두움이 조금씩 물러나고 그 많은 별들은 한 순간에 자취를 감춘다.

옥벽폭포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산허리를 감아 돌며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수목성장 한계선을 넘은 이곳에는 나무 한 그루 없고 잔디만 자란다. 그 곳에 뿌리내린 야생화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4시. 랜턴 불빛 없이 진행한다. 8월인데 산비탈 한 쪽에 눈 녹은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기하다.

동쪽 하늘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백두산의 웅장한 모습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4시 20분. 드디어 동쪽 하늘에 불덩이가 불끈 솟아오른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환호한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기에 그 모습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차일봉(2596m)에서 녹명봉까지는 아찔한 바위 벼랑의 연속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녹명봉(해발 2603m)에 도착한다. 천지가 발아래서 한 눈에 들어온다. 야생화와 어우러진 천지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백운봉과 이웃한 녹명봉(지반봉)은 산기슭에서 사슴들이 뛰놀며 엇갈라 울 때면 산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가 듣기 좋아 녹명봉이라 하고, 옛날에 영지가 많이 자랐다고 해서 지반봉이라고도 부른다.

천지는 천지 창조의 신비함을 간직한 천상의 호수라는 뜻으로 대택, 대지, 용왕담, 달문담, 신분, 용궁지, 천상수, 달문지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백두산 천지는 여러 차례의 화산 폭발과 함몰에 의하여 이루어진 칼데라호이다. 수면의 해발 고도는 2,189m로 전 세계 화산호 중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백두산 정상부는 년중 기온이 매우 낮은 이유로 인해 1년중 여름철 2-3달을 제외한 나머지 달에는 눈과 함께 강수량이 매우 많은 편이고, 증발량이 매우 낮기 때문에 호수의 물은 쉽게 마르지 않는 것이다.

백두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2,749.2m)이며 산의 윗 부분에 부석이 덮여 있어 "백두(白頭)"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두산에는 6월 말까지도 눈이 남아있고, 7월 중순까지도 음지 일부분에는 하얀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백두산은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해발 2,500m이상인 봉우리만도 16개이며, 시대에 따라 이들 봉우리의 명칭이 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군봉(2,749.2m), 망천후(2,712m), 비류봉(2,580m), 백암산(2,670m), 차일봉(2,596m), 층암산(2,691m), 마천우(2,691m) 등의 7개 봉우리에만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우리의 장군봉을 백두봉이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하여 삼기봉, 고준봉, 자하봉, 화개봉, 철벽봉, 천활봉, 용문봉, 관일봉, 금병봉, 지반봉, 와호봉, 관면봉 등 16개 봉우리에 모두 명칭이 있고 이러한 명칭은 1900년대 초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5시 15분. 왼쪽은 천지, 오른쪽은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마치 초록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다.

천지를 바라보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는 도시락 아침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행복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김치, 깍두기, 무말랭이, 가지무침 등 소찬이지만 천지를 바라보며 먹는 이 아침식사는 분명 아무나 누리는 호사는 아닐 것이다.

30분간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백운봉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긴다.

해발 2691m 백운봉은 중국쪽 최고봉이다. 해맑은 날씨에 뭇봉우리들이 각기 웅자를 드러낼 때에도 백운봉만은 종일토록 흰 구름이 감돌기 때문에 백운봉이라 이름하였다. 백운봉에서 천지와 멀어지며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6시 30분. 가파른 내리막길에 펼쳐지는 꽃밭은 알프스 초원을 무색케 할 정도로 광활한 푸른 초지에 호범꼬리 장백제비꽃 구름범의귀 하늘매발톱 개감채 등 온갖 희귀한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백두산 고산지대에서 들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석달간(6월중순∼9월중순)뿐. 이 기간에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이 동시에 찾아온다. 그러면 해발 1800m(수목생장한계선)이상의 관목지대(키 25cm이하의 작은나무)에서 자라는 들꽃(정확하게 말하면 꽃나무와 화초)은 이 짧은 기간에 꽃 피우고 꽃가루받이 한 뒤 씨를 맺고 뿌린 뒤 진다.

백운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30여분 내려서면 한허계곡(해발 2060m)에 닿는다. 천지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시원한 한허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면서 후미 일행을 기다린다. 30분 정도 지나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한허계곡에서 청석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7시 40분. 서파 삼문에서 종주를 시작한 한국인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종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7시 55분. 왼쪽으로 백운봉이 그 이름에 걸맞게 운해에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냈다 숨바꼭질하고 어느덧 천지가 가장 잘 조망된다는 청석봉 아래에 닿는다.

시야가 탁 터지며 천지가 보이자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기념 촬영을 하느라 멋진 포즈들을 잡는다.

 

바람이 점차 거세 진다. 바람은 백두산 날씨에서 가장 독특한 기상요소 중에 하나란다. 백두산 날씨가 그처럼 복잡하게 변화하고 겨울이 길고 추운 것도 모두 바람의 특성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의 산에서처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큰바위나 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30분 후 너덜 길을 따라 청석봉(해발 2662m)을 오른다. 꼭대기에 오형제처럼 다섯 봉우리가 뭉쳐 선 것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면 받칠 듯 버티고 있는 모습이라 '백두의 옥기등' 이란 영예를 지니고 있다. 그 다섯 봉우리들이 푸른 암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청석봉이라고 부른다.

가파른 비탈길에는 벼랑에 뿌리를 내린 고산양귀비가 수줍은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각종 야생화가 지천인 천상화원이 펼쳐지며 눈을 즐겁게 한다.

▲ 고산양귀비

▲ 두메자운

▲ 구름송이 풀

▲ 긴범꼬리

청석봉을 지나자 바다처럼 보이는 백두산 서파 고원이 드넓은 만주벌판을 향해 말을 달리듯 거침없이 펼쳐진다. 갑자기 천지가 심술을 부린다. 백두산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사방으로 운무가 덮이고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청석봉 허리는 급경사인데다 날카로운 바위들로 이루어진 너덜 지대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세석(잔돌)이 깔려 매우 미끄럽고 위험하다. 조심조심 내려서 안부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지척인 마천우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시끌시끌하다.

9시 30분. 마천우(해발 2459m)에서 천지와 마지막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10여분 내려와서 5호경계비로 가는 길과 주차장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자리를 잡고 다른 일행들은 때 이른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아침 먹은 것도 채 소화가 되지 않은 난 연양갱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며 후미를 기다린다.

평소에 산행을 하지 않은 일행들은 무척 힘들어하며 다른 일행의 걸음을 더디게 한다. 성실한 후미 가이드가 무척 고생이 많다.

10시 10분. 5호 경계비로 오르는 계단은 휴일을 맞아 관광 온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없이 없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백두산이 아니다. 요즘 중국인들에게 각광받는 휴양지 장백산이다. 가슴이 아려온다. 백두산의 중국 이름은 장백산(長白山)이다. 머리가 허옇다 하여 백두산이니 중국 측 이름도 뜻은 같겠다. 중국 땅 13km를 밟은 것에 불과한 장백산 종주에서 경험한 선경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이 어깨에 매는 가마를 타고 5호 경계비로 오르는 뚱뚱한 중년의 중국 아주머니는 무슨 황후나 된 것처럼 거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5호경계비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다. 백두산 천지를 국경이 가로지른다. 본디 물은 하나이겠으나 애꿎은 천지 물은 남쪽 60%가 북한 물이고, 북쪽 40%는 중국 물이다. 1962년 양국이 맺은 조약의 결과다.

10시 30분. 주차장에 도착하여 8시간의 종주는 끝이 난다. 평소 꾸준히 산행을 해 온 사람들이라면 6-7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장백산대협곡(일명 금강대협곡)으로 이동한다. 대협곡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

천지가 용암을 분출하며 만들어낸 장백산대협곡은 길이만 15km다. 골의 깊이는 80-100m, 폭은 100-200m다. 발 아래를 똑바로 내려보기 어려울 만큼 경사가 급하다. 말 그대로 V자 형상의 협곡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그 깊고 넓은 골짜기 곳곳에 기묘한 생김새의 바위들이 화산 폭발 직후 자세 그대로 멈춰 있다. 협곡의 물은 천지에서 발원했고 중국 측 송화강을 이룬다.

1998년 산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끄러 왔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나무 통로를 따라 빙 돌면서 20분 정도 구경하고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여 서파산문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서파 종주 일정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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