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그림·성

아프리카 잠바브웨 조각예술

울산 금수강산 2006. 12. 8. 19:42

SHONA(쇼나)

 




짐바브웨의 조각 공동체 '텡게넨게'에서 태동해 현대 조각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3세계 미술이다.
1950년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조각 공동체인 텡게넨게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현대 조각으로,대표적인 제3세계 미술로 꼽힌다. 쇼나는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부족 이름이며, 기원전부터 독특한 석조문명을 이룩하였는데, 국명인 짐바브웨 역시 '돌로 지은 집'을 뜻할 정도로 돌과 인연이 많은 나라이다.

쇼나조각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당시 로디지아(짐바브웨의 옛 국명) 정부가 서양미술을 들여오기 위해 국립미술관 설립을 추진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63년 영국 런던 전시회를 시작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해 1969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 1971년 파리현대미술관, 1972년 파리 로댕미술관 등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현대조각의 한 흐름을 형성한 이래, 대표적인 제3세계 미술이자 고급미술로 자리잡았다.

돌의 본성에 대한 영적 접근을 통해 아프리카 토착문화의 역동적 생명력을 표현하면서,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까지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특히 돌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정과 망치 등 전통적인 도구만 이용해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돌 그 자체에 영혼을 불어넣는 자연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조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쇼나 조각은 이미 1960년대부터 전세계적인 관심을 끈 미술장르다.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짐바브웨(Zimbabwe)는 태고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화강암이 풍부하다.
이 화강암은 성분의 차이에따라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색조를 띄고 있으며 연마와 가열방식에 따라 또 다른 형태와 빛을 발한다.
스케치도 없이 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작업으로 돌을 쪼아낸다.
돌의 형태를 존중하기 때문에 돌로 무엇을 만든다기 보다는 돌속에 숨어있던 형상을 찾아내는 쪽에 가깝다.
이점이 바로 쇼나 조각과 다른 현대 조각의 큰 차이점이다.

쇼나조각이 세계적인 관심을 끈 계기는 1969년 현대미술의 성전이라고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지면서부터다.
전시가 시작되자 세계는 깜짝 놀랐다.
조각이론이라고는 한번도 접한 적이 없는 아프리카장인들의 작품이 이름있는 현대 작가들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기때문이다.
영국의 선데이 텔리그라프지가 "세계를 이끄는 10명의 조각가를 꼽는다면 최소한 5명은 쇼나 조각가일 것"이라는 표현을 했을 정도다.

영국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가진 데 힘입어 쇼나조각은 1969년 뉴욕 현대미술관,1971년 파리 현대미술관,1972년 로댕미술관에서 잇달아 전시회를 개최하며 고급미술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찰스 왕세자 등 그들의 작품을 영구소장하는 갤러리들과 전문 컬렉터 집단까지 나타났다.

 

 



짐바브웨의 전통조각인 쇼나 조각은 BC 8세기 때부터 시작됐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약1000년전 짐바브웨에서 약180cm의 soapstone(동석)의 bird(새) 쇼나 조각 등이 발견된 후로, 쇼나 조각은 1950년대 이후 contemporary art의 현상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하마터면 아프리카 한 나라의 이름 없는 조각으로 묻힐 뻔했던 이 조각은 피카소(Picasso), 헨리무어(Henry Moor), 마티스(Matisse)의 친구이자 세계적인 art agent였던 프랭크 맥퀸(Frank McEwen)이란 영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7년 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정부 초청으로 서구의 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국립미술관 초대 관장으로 온 프랭크 맥퀸은 오히려 역동적인 쇼나 조각에 매료되어 그들만의 개성이 깃든 작품 창조를 위해 여러 도움과 자극을 주었다. 그는 실험적인 미술학교를 세웠고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틀에 짜인 교육이나 평가보다는 개개인의 창조적인 열정을 훨씬 소중히 생각한 그의 도움으로 짐바브웨 사회의 고유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작가들의 활동이 활기를 띠게 됐다. 이후 뉴욕현대미술관(MoMA.69년), 파리 로댕미술관(71년), 파리 현대미술관(72년)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기획, 쇼나 조각을 세계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쇼나 조각은 아프리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고급스러운 예술작품으로 인정 받게 됐다.

이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 온 거의 대부분의 1세대 쇼나 조각가들은 사망했다. 제 2, 3세대들은 그러한 빈자리를 열심히 채워 나가고 있다. 이들 젊은 조각가들은 해외로 여행과 유학을 가고 전시회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쇼나 조각의 예술을 한 단계 더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념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문화적 특수성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차원들을 탐구하고 조각으로 표현한다. 인위적으로 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돌을 존중하고 그 안에 있는 영혼의 참 모습을 담아내려는 그들의 노력. 쇼나 조각에 나타난 이런 자연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움은 아마 돌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함께 호흡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쇼나라는 말은 사실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부족 이름이다. 국명인 짐바브웨 역시 토착어로 '돌로 지은 집'을 뜻할 정도로 돌과 인연이 많은 나라이며 기원전부터 독특한 석조문명을 이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개가 많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1950년대 이후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많은 관심을 받으며 현대 조각의 새로운 흐름으로 평가 받고 있다. 쇼나 조각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들(미개하고 굶주리고 야만적인)은 어느 새 사라진다. 그렇다고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민속품이 연상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친숙한 이미지는 아프리카다운 순수함(마치 영혼이 돌에 깃들어 있는 듯한)을 보여준다.

쇼나 조각의 신비로움은 우선 조각의 재료인 돌에서 시작된다. 짐바브웨는 태고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화강암이 풍부한데, 이 화강암은 우리나라 돌과 달리 가열방식이나 다듬는 방향 등에 따라 컬러와 질감이 달라진다. 여기에 쇼나 부족의 조각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창조적인 잠재력, 철저한 장인정신 등이 합쳐져 돌조각은 어느새 신비로운 빛을 발 하게 된다.

돌 조각이 보여주는 생명력과 형태를 왜곡하거나 부풀리고 강조하는 기법, 자연 소재인 돌을 순수하고 진실하게 다루는 것 등은 쇼나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쇼나 조각가들은 조각을 할 때 스케치를 하거나 돌 위에 밑그림 따위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저 철저하게 돌의 형태에 따른 구상을 통해 돌로 무엇을 만든다기 보다는 돌 속에 숨어있던 형상을 찾아내는 쪽에 가깝다.

이처럼 쇼나 조각은 돌의 본성에 대한 영적 접근을 통해 아프리카 토착문화의 역동적 생명력을 표현하면서,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까지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표적인 현대 조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돌조각 작품들 10개중 5개는 짐바브웨에서 온 것이다."

마이클 셰퍼드(런던 선데이 텔레그라프지 미술 평론가)

아프리카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짐바브웨의 쇼나 조각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쇼나조각 국제 전시회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특히 1971년 프랑스 파리의 로댕 박물관과 1972년 파리 현대 미술관 에서 열린 이들의 작품 전시회는 당시 도도한 유럽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서구의 예술교육이나 일반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한 짐바브웨 조각가들의 작품이 역동적이면서도 품격있는 것으로 평가 받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르 몽드지는 당시 '로디지아(짐바브웨의 당시 이름)의 기적'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수많은 수집가와 애호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사들였다.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찰스 왕세자 등 그들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는 갤러리들과 전문 컬렉터 집단까지 나타났다. 이처럼 쇼나 조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미술사 적인 가치나 학자들의 연구 비평 보다는 조각가들의 순수하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말미암은 이유가 더욱 크다. 특히 서구의 조각과는 달리 돌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정과 망치 등 전통적인 도구만 이용해 돌 그 자체에 영혼을 불어넣는 자연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현재 짐바브웨 조각예술의 진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차풍구 조각공원(Chapungu Kraal)이다. 1970년에 세워진 이곳은 짐바브웨에서 가장 유서깊은 사설 미술관이며 드넓은 잔디밭과 미술관에는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쇼나 조각의 해외 전시회는 이후 세계 도처에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작가들은 단순히 짐바브웨의 조각가로 알려지기보다는 국제적인 조각가로 알려지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The Artists

"우리는 부유하다. 우리에겐 돌이 마치 과일과 같다. 당신은 과일의 속을 먹기 위해 그것을 열지만, 나는 돌을 연다." -버나드 마테메라

짐바브웨의 쇼나 조각이 미술계에서 주목이 받은 지는 대략 50여 년에 불과하지만 헨리 문야라찌(Henry Munyaradzi), 버나드 마테메라(Bernard Matemera), 존 타카위라(John Takawira), 니콜라스 무콤베란와(Nicholas Mukomberanwa) 등 오늘날 짐바브웨의 조각가들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정 받는 예술가들이다. 1950년대 말에 프랭크 맥퀸(Frank McEwen)에 의해 이끌어진 쇼나 조각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은 '현대 조각의 새로운 길','아트 누와르의 부활' 등의 평가를 받으며 현대 조각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베니스의 비에날레, 시카고, 런던, 보부르 아트페어 등 해외에서의 전시를 통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 받고 있다. 또 2세대 작가들은 그들만의 전통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쇼나 조각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전기톱으로 절단해 돌의 원형을 훼손하는 대신 오로지 정과 망치만을 이용해 돌덩어리에 영혼을 불어 넣는 쇼나 조각가들. 그들의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열정과 감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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