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산

밤티재~속리산~문장대~신선대~청황봉~피앗재~형재봉~갈령삼거리~비재 (2)

울산 금수강산 2008. 8. 3. 09:46

1. 언제 : 2008. 8/2(토요일)

2.어디서:밤티재~문장대~신선대~청황봉~피앗재~형재봉~갈령삼거리~비재

3. 날씨 : 흐림후 비조금

4. 왜: 종주

5. 누구랑 : 원조우산악회 

 

 

 

 

 

 

남진 22 구간

속리산권

늘재-3.3-밤티재-4.45-문장대-1.17-신선대-2.58-천황봉-5.66-피앗재-1.56-형재봉-0.7-갈령삼거리
9.82Km 1,408m 6.45Km 1,084m 15.96Km 19.42Km 470.11Km
갈령-1.2-갈령삼거리 1.20Km 당일
20.62Km  

남진 23 구간 속리산권
갈령삼거리-4.15-비재-3.85-봉황산-1.45-산불감시초소-3.26-화령재-1.87-윤지미산-4.41-무지개산-4.27-신의터재
10.28Km 1,248m 12.42Km 1,692m 22.38Km 23.26Km 493.37Km
갈령삼거리-1.2-갈령 1.20Km 무박
24.46Km  

 

 

 

 

 

 

 

 

신선대

법주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5.7킬로미터지점, 경업대 바로 뒤, 입석대와 청법대 중간 지점에 위치한 암석 덩어리의 산봉우리 

아득한 옛날 속리산에서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와 춤을 추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은 고승이 평생 원하는 선유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지나 신선들과 놀고자 그곳으로 달려 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지라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이곳을 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를 하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곳으로 달려갈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선들이 놀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업대

입석대 좌측 아래쪽에 있는 바위 신선대를 내려와 천황봉과 법주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법주사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바위이다.

이곳에서 바라다 보는 입석대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

조선시대 인조때 임경업장군이 독보대사를 모시고 무술연마 등을 한 수련도장으로 삼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따라 경업대라 부른다. 이 경업대로부터 5보지점에 뜀금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뛰어 넘는 훈련을 하였다고 한다.
임경업이 심신을 단련하고 있을때, 어느날 밤에 하늘의 별을 향해 구국하는데

신력을 내려줄 것을 빌고 있던 임경업은 바람처럼 계곡을 날라오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태연하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 정체를 확인하고자 암석위에 버티어 서서「요괴는 무엇이냐」고 고함을 쳤다.
그러자 난데없이 산 계곡에서 강풍이 몰아치는데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을 만큼 심했고 자칫 잘 못하면 하늘로 날아가 벌리듯 했다.

그러나 임경업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암석위에 버티어 서서 그 강풍을 막아냈다.

이윽고 바람이 멎으면서 바랑을 진 도승 하나가 사뿐하게 암석으로 날아올라왔다.

임경업이 그 동작을 보고 범상치 않음을 알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신력(神力)을 내려주도록 부탁을 했다.

도승은 그 스스로가 독보대사(獨步大師)라고 말 하고 언제든지 이 암석을 둘로 갈라 놓고

그 사이에 길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때 비로소 신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석굴곁에 있는 물을 하루에 다섯 번 씩 마시면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임경업이 수행을 하는데 그 곁에서 전략과 학식등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속리산 천왕봉

보은군 내속리면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로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그리고 상주시 경계에 걸쳐 있으나

명승고적이 보은군에 몰려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고 부른다. 원 이름은 산봉우리가 9개 있다하여 구봉산이었으나

신라때부터 속리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산으로 많은 산봉우리가 기묘하고 산세가 웅장하며 기암이 구름 위에 솟아올라 마치 옥부용과 같이 아름답다.

속리산은 여덟이란 숫자와 인연이 깊은데 먼저 이름이 여덟가지다. 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등이 그것이다.

연봉이 또 여덟이 있으니 천왕봉을 비롯하여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과 수정봉이다.

또한 대가 여덟이니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가 그들이다.

돌문이 여덟 개 있으니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내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이다.

또한 속리산에는 옛 기록에 “여덟다리 아홉구비”라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에는 수정교와 환선교, 그리고 태평교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