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 유적지는 예술성과 웅장미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신전과 로마의 콜로세움을 능가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우리의 기억 속에 가깝게는 영화‘킬링필드’의 망령에서부터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점철돼 왔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나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캄보디아에 있는 세계 최고의 유적 중의 하나인 앙코르와트 유적은 연간 5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앙코르와트 자체만을 보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유적지는 캄보디아 관광 코스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들어 있다.
현재, 앙코르와트는 단순한 관광지의 차원을 넘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조상들이 누렸던 찬란한 영화처럼 자신들도 언젠가는 잘 살 수 있다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는 등대의 역할이 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여러 군데서 읽을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사용하는 화폐‘리엘 ’과 그들의 국기에는 앙코르와트가 선명히 새겨져 있고 30년 전 생산하기 시작한 맥주 상표에도‘앙코르비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앙코르와트가 이토록 유명세를 타게 된 데에는 세부적인 조각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웅장한 규모 (동서로 약 1,500m, 남북으로 약 1,300m의 터에 높이 65m의 중앙탑을 중심으로 지어진 웅장한 석조 건물)면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참배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앙코르와트는 오랜 세월 자연과 사람들의 손을 타서 훼손되었지만 아직도 험한 세월을 이겨낸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큰돌을 마치 주단처럼 깔아 놓은 참배로에 들어서면 중앙사원의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원은 웅대한 방추형의 중앙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어 있는 행랑, 그것을 둘러싼 삼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축구성은 입체적이며 중앙이 약간 높게 되어 있다.
이런 모습의 앙코르와트(앙코르라는 단어는 왕성함을 의미하며 와트는 사원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는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에 건립한 사원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의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와트도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아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을 돌로 정확하게 쌓아 놓았으며, 높이가 59m에 이르는 중앙 사원탑의 끝에서 삼중으로 둘러싼 사각탑 끝을 선으로 연결해 보면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사원의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을 약간 받긴 했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 장식 등에서는 그들만의 앙코르 특유의 기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760m에 이르는 회랑 벽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성한 우물,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수랑과 탑 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구조물이다.
조형물로는 하늘의 무희‘아프살라’, 여러 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치켜든 큰 뱀, 창문이나 기둥의 장식과 조각 등이 보인다. 사원에는 벽화, 조각 등 불교 미술품이 가득 차 있어 사원 전체가 불교 미술의 보고로 되어 있다. 특히 입면 구성의 기술은 크메르 예술의 압권으로 전해진다. 또한 제2회랑 및 제3회랑의 네 귀퉁이에 있는 포탄형의 탑은 중앙사원의 탑과 함께 이등변삼각형의 입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기하학적 구성은 힌두교 사회의 계급제도와 인도 부다가야 오탑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해진다.
세밀한 구조를 살펴보면 홍토를 쌓은 위에 사암을 두껍게 붙인 뒤 그 조각 표면에 새겼으며 세부 장식에는 인도적인 것과 비인도적인 것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비인도적인 부분에는 이웃 나라인 참파나 자바 유적의 양식과 유사한 경향이 발견되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양도 간혹 있다.
이 유적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로 저수지와 운하 망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수량조절과 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우주론에 입각한, 우주 중심부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주론적 사고와 도시의 관계는 주민과 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설정되었다. 중심부의 산, 즉 피라미드 사원은‘데바라자’라고 불리는 신격화된 왕이 관장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은 절대적 신의 하나로 동일시되었고 이런 동일시는 왕이 죽었을 때 중심부 사원을 왕의 사원이나 무덤으로 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앙코르에 있는 다른 많은 사원들 역시 인도의 우주론과 신화적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앙코르 왕조의 종교적 역량을 과시한 것이 앙코르와트라면 국가적 역량을 과시한 것이 바로 앙코르톰이다. 앙코르는 왕도를 뜻하고 톰은 거대함을 나타내므로 이는 곧 큰 왕성함을 의미한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왕조에서 가장 융성했던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운 것이다. 앙코르톰은 한 변이 3Km의 정방형 도시로, 둘레는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중심에는 바이욘 묘가 있으며, 이 묘에서 동서와 남북으로 뻗은 두 개의 도로가 도시를 넷으로 나눈다. 왕도의 문은 두 도로가 성벽과 교차되는 곳에 4개, 왕궁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은 대로상에 1개 등 모두 5개가 있다. 이 5개의 문 앞에는 돌로 만든 큰 뱀을 껴안고 있는 거인상들이 있으며, 문은 4면에 얼굴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탑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계속되었던 캄보디아의 정치적, 군사적 소요 기간 동안에 앙코르의 사원들은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빠르고 무성하게 자라는 각종 식물과 침식을 유발하는 물, 기타 자연현상 등도 훼손의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황폐해진 앙코르 유적지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남녀선수 1천여 명이 참가한 마라톤 대회를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개최하여 정규 마라톤 코스의 절반인 21Km를 달려 평화와 안전,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관광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전세계에 보여주려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앙코르와트의 건축 배경과 발견
앙코르 왕조는 890년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때부터 13세기초까지 앙코르의 왕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끝 부분에서 북쪽으로 윈난까지, 또 베트남에서 서쪽으로 벵골만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이곳 앙코르와트가 있는 앙코르 시는 크메르 왕조의 중심지인 이곳은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크게 번성하고 발달한 왕국이었다.
앙코르에서 위대한 건설과 축조는 300년이 넘게 계속되었는데 이들의 종교는 시바 신과 비슈누신을 섬기는 힌두교에서 점차 관세음보살신앙이 자리를 잡았다. 앙코르와트는 모두 3개의 기단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기단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새겨져 있고, 목욕탕 등이 들어서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단에 오르면, 각 변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탑까지는 213미터이다. 정면에서 보면 탑이 3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옆에서 보면 제3기단의 모서리에 1개씩, 그리고 가운데 가장 높은 탑 1개가 서 있다.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는 앙코르와트 사원은 1868년 프랑스 탐험가 헨리 모하트가 발견했다. 이 탑의 모양은 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연꽃 모양 또는 원뿔형으로 되어 있다. 앙코르와트는 우주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중앙탑은 신화적인 산을 상징하고 있는 메로로서 우주의 중앙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원 둘레에 있는 해자는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
9세기 이후 14세기까지, 크메르 민족의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전성기를 이룬 고대국가 앙코르, 타이의 침략으로 4백 년간이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불가사의한 역사를 지닌 곳이기에 앙코르와트는 일종의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열대밀림지역의 폐허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웅장한, 거대한 석조유적이 발견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헨리 모하트가 발견한 이래 앙코르와트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와, 비문 해독이 이루어지면서 사라졌던 앙코르 왕국의 연대표가 완성되기도 했다.
자세히 본 앙코르와트
수리아바르만 2세 자신의 무덤이기도 한 앙코르와트는 1113년에서 1150년 사이 약 37년만에 완공된 사원이다. 앙코르와트는 가로 1.3킬로미터 세로 1.5킬로미터 이며, 거대한 해자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형태다. 해자의 폭은 200미터, 그 길이는 505킬로미터나 된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예외 없이 강처럼 넓은 해자를 건너기 위해 200미터 길이의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에는 나가(물의 신)신이 조각되어 있다.
〈앙코르 톰〉
12세기말에서 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 사원으로 지은 바이욘 양식의 건물인 앙코르 톰은 앙코르와트 북쪽 1.7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크메르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앙코르 톰은 그 규모를 비교하면 앙코르와트보다 훨씬 거대하다.
이 유적은 가로 3킬로미터 세로 4킬로미터 폭 100미터의 해자가 둘레를 감싸고 있는 아주 거대한 사원이다. 하지만 지금, 해자의 물은 거의 말라 있는 상태이다.
앙코르톰(도성) 내부에는 바이욘, 바푼, 피미나카, 코끼리 테라스, 레페르왕의 테라스 등이 있다.
바이욘상은 캄보디아의 1천 리엘 짜리 화폐에서도 볼 수 있다. 앙코르 톰의 중심지인 바이욘은 앙코르와트보다 거의 100년 후에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전설에 나오는 우주의 중심에 대한 얘기가 있다. 바이욘은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불교 사찰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남쪽으로 바이욘에서 5분쯤 걸어가면 바푼 사원이 있는데, 우다야바르만 2세가 1060년에 세웠으며 이곳은 힌두교의 사원이다. 양식은 바푸온 양식이고 현재는 복원작업을 하고 있지만 깨진 돌을 일일이 맞추어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시엠립〉
프놈펜에서 국내선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시엠립은 인도차이나 중앙평야에 우뚝 서 있는 이 고대 왕국의 유적에는 물과 햇빛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맑은 물에 찬란히 비친다. 이곳은 엄청난 감동과 함께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곳이다. 인도차이나 반도내의 최고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닉 핀〉
‘똘똘 감은 뱀들’이란 뜻의 닉 핀은 다섯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에 있는 연못의 사방에 네 개의 다른 연못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앙에 있는 연못은 하늘의 가장 위에 있는 연못을 뜻하는 것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아나바타파 호수를 형상화 한 것이다. 동서남북의 각 연못은 땅으로 흘러나온 네 개의 큰 강을 의미하는데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는 무척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 왕의 테라스〉
왕의 연설을 듣거나 행사를 관람하는데 쓰였던 코끼리 테라스는 350미터 길이의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옹벽은 온통 코끼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코끼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코끼리 행진(Parade of Elephants)이 테라스의 양쪽 끝에 새겨져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바로 옆으로는 문둥이 왕의 테라스가 자리잡고 있다. 문둥이 왕의 테라스에 오르면 머리가 깨진 상태로 앉아 있는 나상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모조품이다. 진짜는 머리 통이 온전한 모습으로 프놈펜의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나병으로 죽은 야소바르만 왕의 모습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테라스의 옹벽에는 예쁜 여자 댄서(압사라스)가 다섯 층에 걸쳐 조각되어 있다. 거대한 앙코르와트의 건축 양식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다리를 건너면 높이 7미터나 되는 성벽을 가진 정문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놀랍게도 그 옛날 우리 나라의 규장각처럼, 또는 장서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하니 앙코르왕국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장서각을 지나면 양쪽으로 2개의 못이 나온다. 이 못의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치는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또 다른 장관이다. 이곳의 왼쪽에는 현재 승려들이 기거하는 사찰이 있다.
〈타 프롬〉
타 프롬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원이다. 무너진 돌 더미가 통로를 막고 있고, 거대한 무화과나무 뿌리는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을 완강히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돌틈 사이로 지나가는 건 고개를 빳빳이 든 카멜레온이다. 걸어 다니면서도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더위마저도 잊게 되는 곳, 타 프롬은 그런 곳이다. 한때, 이 사원 안에는 8만 명의 사람들이 3천 개의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반테이 스레이〉
반테이 스레이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라바르만 2세때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파괴의 신인 시바를 위해 만들어졌다. 규모가 작지만, 힌두교의 신화를 형상화시킨 부조들이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앙코르 유적지에서 2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빠트리지 않고 찾는 사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크메르루즈가 출몰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오토바이 기사에게 100달러를 집어주고도, 보디가드를 해줄 경찰을 한 명 동반해야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오토바이 기사에게 10달러만 주면 가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반테이 스레이에 가기 위해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꼬박 한 시간을 달려야 된다. 길의 절반은 포장이 되어있고 나머지 절반은 비포장 길이다. 그러나 가는 동안 내내 보여지는 농촌의 풍경은 그 정도의 고생쯤은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바짝 마른 풀을 뜯는 앙상한 소들, 도로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오리떼, 원숭이는 키 큰 나무 사이로 날아다니고 까맣게 그을린 시골 아이들은 낯선 외국인들을 향 해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어댄다. 신화도, 조각도, 거대한 사원도,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따라 올 수는 없다.
앙코르 와트 신비 벗겨지다, 선사시대 흔적 발견
지금의 캄보디아는 아시아의 불교문화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거대성과 미묘한 불사의 미소를 한 번보고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면 누구든지 무아의 경지에 빠져든다. 나는 누구이며,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 속에서 우주 속에 하나의 소중한 개체임을 깨닫게 해준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앙코르시대란 크메르 왕조의 지배시대로, 초기에는 힌두교를, 중반이후에는 불교를 믿으면서 건축과 조각에서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앙코르와트 또한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라마야나 신화를 크메르의 토착 신앙과 결합시켜 메루산 신화 등 독특한 신화와 예술세계를 창조한 크메르 문화는 후일 인근 국가인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으로 전파되어 동남아 일대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왕코르와트는 망루, 사원, 회랑이라는 3차원적 독특한 공간구조에다 좌우대칭의 기하학적 구조로 되어 있다. 중심사원과 4개의 망루, 그리고 첨탑들은 지상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성스러운 산인 메루를 나타내고 둘러싼 성벽은 장대한 히말라야를, 성벽바깥의 해자는 깊고 넓은 대양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1층 회랑 800m의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는 라마야나 이야기, 천당과 지옥이야기 그리고 크메르 역사를 사실적 기법으로 새겼다. 2층 회랑에는 불상이 전시되어 있고, 3층 중앙의 탑 속에도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본 신비의 모습
앙코르와트 사원은 최근 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신비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특수레이더장비로 비행기에서 항공 촬영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역사에 알려진 앙코르왕국 (657∼1432년)보다 훨씬 이전인 선사시대의 앙코르 문명 흔적들이 드러났다고 최근 발표했다.
선사시대 문명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앙코르와트 사원 북쪽 25킬로미터 지점으로 NASA측은 축구장 크기 만한 유적의 흔적이 선사시대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앙코르 유적을 추적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는 ‘공중촬영 정보종합 레이더(AIRSAR)’이다.
NASA는 항공기에 이 장비를 실어 해당 지역 상공을 비행하면서 미세한 지형의 굴곡과 식생(植生)의 차이 등을 촬영, 이를 3차원의 컴퓨터 영상으로 재현한 결과 이 같은 흔적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런던대 고고학과 엘리자베스 무어교수도 “앙코르 문명은 현재의 사원이 대표적이지만 물 관리와 관계된 저수지 운하 등 방대한 건축물에도 그들의 위대함이 있는 것으로 레이더 탐사결과 드러났다”고 말했다.
앙코르 왕국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사원벽화에 새겨진 산스크리트어로 그 역사를 짐작만 할 뿐이다. 전성기인 12세기에는 로스앤젤레스 만한 면적에 1백만 명이 거주했으나 갑자기 멸망하고 그 많은 국민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현대과학은 앙코르의 선사시대 문명은 고사하고 앙코르와트 사원 등 일부 유적지에 대해서도 과학적 문명수준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여지고 있다. 더구나 앙코르 유적은 대부분 밀림 속에 있는 데다 캄보디아 독립 (1953년)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도처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다. 유엔전문가들조차 앙코르 유적을 완전 복원하려면 1백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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