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

봄페이의 신비를 벗기다

울산 금수강산 2006. 12. 5. 18:00

Pompeii의 神秘를 벗기다!  

Pompeii는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채 1700년 동안 7~8미터 화산 잿더미 속에 말없이 파묻혀 있었다. 문헌에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이자 환락의 도시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그곳이 어디인지 행적을 모르다가 1709년 4월 어느 날 수도원 뜰, 우물 작업을 하던 인부의 곡괭이에 걸린 쇠붙이가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다.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우스 화산이 용암을 토하다. 그 당시 광경을 컴퓨터 그래픽로 담아 낸 모습.. 

 

 

잿더미를 걷어낸 폼페이 중심 모습이 Mt.Vesuvious 화산을 뒤로한 전경.

 

Pompeii의 발굴 경위

 

1. 1709년 4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최초 작업 인부에 의해 발견되다.

2. 1738년 4월 밭 갈던 농부가 곡괭이에 부딪치는 쇠붙이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입소문이 퍼지자 당시 가장 유명했던 토목기사 도메니코 콘타나가 적극성을 띠고 작업에 뛰어 들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다.   

3. 1938년 12월 11일 헤르쿠렐늄 극장에 세워진 돌벽, 눈부신 프레스코 벽화, 원형극장등이 발견되다.

 

 

원형 극장 전경 : 수용 인원은 약 8,000명 정도라는 기록인데, 실제 보면 20,00명도 넘게 들어 가는 수준이다. 

 

발굴에 최대 공헌자는 독일 고고학자 "요한 요하임 빙겔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이다.

1764년 "로마고대 미술사"를 편찬하여 학문적 체제확립을 하였고, 그 영향이 세계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참고로, 당대의 세계적 최고의 석학으로 평가 받던 "Joachim Winckelmann"영문 표기 바로 잡습니다.    

 

 

세계 제 1, 2차 대전으로 발굴 작업이 중단 되었다가 1951년 아메마데오 마이우리의 지휘감독 아래 발굴이 다시 활기를 띠어 금일에 이르고 있으나 아직도 3/5 정도 밖에 발굴이 안 되었다고 한다.

 

 

황금시대를 구가한 화려한 벽화!

 

1748~1763년 본격적 발국 시작 하여 마침내 폼페이의 족보(근거)"rei publicae pompeianorum" 비문을 발견하다.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 되기는 BC 310년 제 2차 삼니옴 전쟁때 로마의 함대가 사르누스 강에 상륙하여 공격하려다 실패 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지만 BC 89년 로마 장군 루키우스 코린넬리우스 술라에 의해 마침내 로마에 함락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그 장소가 어딘지 모르다가 위 비석을 통해 마침내 Pompeii라는 사실이 판명 되다.

 

AD 1803년 ~ 1873년 영국 역사 소설가 E. G 리턴에 의해 쓰여진 폼페이 최후의 날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더욱 세인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 오르다. 이 소설은 빙겔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삼은 드라마다.    

 

 

공창을 옆으로 낀 삼거리 : 이렇게 화려한 곳에 공창이 있었다니...!!!!! 

 

 

현대식 이름을 빌리면, 최고급 콘도 휴양지 전경.

 

 

휴양지 전면 풍경

 

 

VIP용 휴양지 입구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하는 신의 저주인지, 자연 발생인지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시체의 모습. 

 

 

졸지에 날벼락을 맞고 죽어가는 최후의 의식 끝자락엔 과연 무슨 생각들이 숨어 있었을까?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돌히 하다가 그 재앙을 만났을까....???

 

 

앉아서 성교장면 화석이나 모조품이라는 설도 최근 흘러 다니고 있음.  

당시 사망자 수는 2,000명설과 20,000명설이 있다.  

 

 

 

人道와 車(마차)도의 구분이 명확하다. 

마차 바퀴가 할퀴고 간 자욱 깊이로 년대를 추정한 고고학자에 따르면 BC2500년의 유구한 도시였다는 설이다.  

 

 

현대 최고급 일류 호델 사우나 보다 더 우아하고 훌륭한 사우나 시설에 경탄이 절로 난다.   

이때가, 신석기시대로서 우리나라 선조가 몽촌토성 움막에 기거할때 쯤이니 가이 간접비교가 되고도 남는다.   

 

 

 

언제 그런 재앙이 있었더냐?고 비웃기나 하듯, 베수비우스 바로 턱밑에 평온히 살아가고 있는 마을 풍경.

 

 

이태리 남부 나포리만 연안 항구도시 Pompeii를 끼고 도는 사르누스 강은 베수비우스 활화산을 비웃기나 하듯, 지금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Pompeii는 수 많은 광관객들의 의아스런 눈총을 받아 가며 옛 화려했던 향수를 갈망하면서 도시국가와 로마의 속국 자리를 맴돌았지만 결국 1861년 이태리로 완전 종속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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