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사람들의 발끝에 채이며 땅위를 구르는 하잘것없는 돌덩이들도 함께 모이면 기꺼이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의 열망을 타오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그 믿음의 가치는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성황당의 작은 돌무더기를 통해 소원을 비는 필부에서부터 거대한 돌무더기 천지인 이곳 바이욘 사원을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했던 절대권력 자야바르만 7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인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바이욘 사원의 웅장한 돌무더기를 까마득하게 올려보고 있자면 당연히 그 엄청난 규모의 돌무더기의 위용에 주눅이 들을 법도 한데 그보다는 오히려 돌무더기 안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비록 조각기법의 섬세함만을 따진다면 이곳 바이욘이 앙코르와트사원에 비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투박함 속에 깃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친근함이 보면 볼수록 여행객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친근함이야말로 바로 20만여개의 제멋대로 생긴 돌덩이들이 모여 일궈낸 바이욘 사원만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불교사원 바이욘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유적지 내에서 대표적인 불교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으로 얼핏 보기에 이곳이 불교사원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각 속 간간히 눈에 띄는 관세음보살 상을 제외하고 대부분 힌두설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바이욘 사원 발견 초기에는 고고학자들조차 이곳을 힌두교 사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을까? 바이욘 사원 역시 앙코르 와트 사원처럼 1층 갤러리 벽면 가득 '앙코르 제국의 번영을 새긴 채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크메르군의 위풍당당한 행진, 맨위에 코끼리를 탄 지휘관을 필두로 아래에는 특이한 머리모양을 한 중국인들이 뒤따르고 있다. |
ⓒ2005 김정은 |
▲ 톤레삽 호수를 통해 침범한 챰족, 물반 고기반인 톤레삽 호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잇다. |
ⓒ2005 김정은 |
▲ 건물 안에서 바라본 바이욘 사원 전경 |
ⓒ2005 김정은 |
저 수많은 돌들은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동원되었을까? 저 돌멩이 하나하나를 나르고 올려쌓았던 인부들은 돌 하나를 쌓아가는 자신들의 행위가 조각그림을 섬세하게 맞추어가고 있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돌을 나르는 인부들 모두 어서 무거운 돌을 내려놓기만을 원할 뿐 애초부터 조각그림에 대한 생각은 없을지도 모른다.
▲ 3인의 압살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조각 사이의 틈이 벌어져 있다 |
ⓒ2005 김정은 |
이기적인 마음같아서는 지금처럼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만지며 느낄 수 있게 하면 좋겠지만 그러다보면 유물들의 훼손이 심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언젠가는 유적보호라는 명분으로 이처럼 자유로운 관람형태도 금지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3층에 오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수많은 얼굴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관세음보살이 되고자 한 자야바르만 7세
▲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 일명 바이욘이 미소라 부른다 |
ⓒ2005 김정은 |
크메르 전설에는 자야바르만 7세가 왕 앞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던 대신의 목을 벨 때 독기 어린 액체가 왕의 몸에 튀겨 나병에 걸렸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2층 갤러리에 새긴 부조의 내용대로라면 뱀과 싸우던 용맹한 왕이 뱀의 맹독에 쏘여 나병에 걸려 문둥이가 된 채 테라스(문둥왕 테라스) 건설을 명하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된다.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이 스러져간 한 인간의 비극과 권력의 무상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가 된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며 건설한 문둥왕 테라스에 당도했다.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의 명암
▲ 코끼리 테라스 |
ⓒ2005 김정은 |
▲ 문둥왕 테라스 아래의 섬세한 부조들 |
ⓒ2005 김정은 |
코끼리 테라스에서 수많은 국가의 조공을 받으며 인도차이나반도를 호령하며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를 향해 달렸던 자야바르만 7세, 그러나 말년의 그의 천형과 같은 나병이 그의 몸을 야금야금 엄습한 것처럼 앙코르 제국 또한 자야바르만 7세 이후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한 제국의 흥망성쇠를 유적으로 목격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자야바르만 7세의 효심의 결정판인 타프롬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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