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정리?… 돈 되면 역사도 판다 침략국 독일이 만든 ‘칭다오 맥주’ 대표브랜드로 키워… 붉은 지붕 등 독일 시가지도 보존
1월 26일 오전 9시 중국 칭다오(靑島)항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 오후 5시 인천항을 출발해 밤바다를 달린 위동페리호가 칭다오 항구에서 천천히 접안을 시작했다. 칭다오항에서 출발한 도선사가 배로 올라오고 승객은 하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1등실 승객이 하선하고 다음으로 2, 3등실 승객이 하선을 한다. 그러나 3등실의 주고객인 보따리상들은 언제나 급하다. 틈만 나면 큼직한 짐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튀어나갈 태세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여객선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관에서 벌어지는 보따리상과 관리의 실랑이도 볼 만하다. 배에서 바라보면 칭다오항 왼쪽은 고층빌딩군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불그스름한 지붕의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고층빌딩·빌라가 모여 있는 신시가지는 ‘동해로’(한국에선 서해지만 중국에선 동해가 된다)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동해로 주변은 판자촌 지역이었지만 중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이곳을 개발하면서 주민을 내륙으로 집단이주 시키고 고층빌딩군을 건설했다. 신시가지만 보면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 그만큼 볼거리가 없다는 말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작은 어촌마을 가이드는 자랑스럽게 얘기했지만 결국 중국에 남아 있는 외세침략의 흔적이다. 칭다오는 19세기 중반까지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국 상선과 해군이 칭다오항을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칭다오는 중국의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거듭났다. 100여년 전 군함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항구를 가진 칭다오를 보고 군침을 흘리던 독일은 자국 선교사 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1988년 칭다오를 조차했다. 그리고 이곳에 ‘작은 독일’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칭다오 시내 곳곳에는 독일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칭다오는 ‘홍와녹수남천벽해(紅瓦綠樹藍天碧海)’로 표현할 수 있다. 붉은 지붕, 녹색 숲,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붉은 지붕’이라는 표현은 정확하다. 지금도 구시가지에 짓는 새 건물에는 반드시 붉은 지붕을 올려야 한다. 도시의 바닥에도 독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곳이 많지만 곳곳에 주먹만한 크기의 돌을 박아 만든 돌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칭다오의 대표적인 독일식 건물은 옛 독일 총독부 건물. 1905년 만들어진 이 건물은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1957년 마오쩌둥 주석이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함께 이곳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영빈관(迎賓館)으로 쓰고 있다. 독일 빌헬름 시대의 건축양식을 딴 이 건물에는 유리창, 시계, 식탁까지 당시에는 최고급 독일제품을 수입해 만들었다고 한다. 도사가 마신던 샘물로 맥주 만들어 이런 칭다오 맥주를 두고 중국인들의 ‘허풍’은 절정에 이른다. 칭다오의 가이드는 “칭다오 맥주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노산의 광천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많고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칭다오 시에서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맥주를 홍보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칭다오 맥주는 ‘노산 광천수’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가오훙잉(高紅英)씨는 “손님 중에 칭다오 맥주를 마시고 간염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자랑을 했다. 역시 중국이다.
맥주생산량, 미국 이어 중국이 2위 중국 내에서 칭다오 맥주의 위상은 우리나라 술 회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개방 열풍과 함께 홍콩증시에 최초로 상장한 중국 기업이 바로 칭다오 맥주다. 상하이 증시가 출범한 지 2년 만인 1993년 8월에 상하이 A증시에 상장했다. 칭다오 맥주는 2003년에는 중국 10대 브랜드에 포함되기도 했다. 주룽지 총리 역시 “저장(江)성 서호의 룽징차(茶)와 산둥(山東)성 칭다오의 칭다오 맥주가 중국의 2대 국가 브랜드”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에서 칭다오 맥주의 비중은 높다. 현재 중국의 맥주 생산량은 미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맥주 브랜드는 500여개에 달하지만 칭다오 맥주는 중국 내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또한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되는 중국 맥주가 칭다오 맥주다. 현재 세계 20여개국으로 수출되고 있고, 맥주의 본고장 기술로 만든 만큼 유럽에서도 인기다. 중국 어딜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맥주는 칭다오 맥주가 유일하다. 2000년 이후 중국에는 90여개의 세계 맥주회사들이 13억 인구를 노리고 시장진입을 시도했지만 칭다오 맥주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생산 초기 칭다오 맥주는 일부 귀족이나 독일인만 마실 수 있었던 귀한 술이었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술이 됐다. 한국에도 2001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해 맥주 전문점이나 고급 중국음식점에서는 칭다오 맥주를 마실 수 있다. 1991년부터는 날씨가 무더운 8월 중 2주 동안 ‘칭다오 맥주 축제’가 열린다. 세계 2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고 100만여명이 이 축제를 즐긴다. 또 칭다오 맥주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칭다오 맥주 박물관’은 관광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박물관에는 독일인이 공장을 세울 당시 사용했던 맥주 제조 기계가 전시돼 있다. 당시 사용했던 독일 지멘스(Simens)사의 모터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도 독일에 침략받았던 역사는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장사꾼 중국인에게 아픈 역사보다는 당장의 돈벌이가 우선이다. 아픈 침략의 역사도 돈이 된다면 팔아먹겠다는 중국인의 상술을 확인한 곳이 바로 칭다오였다. 붉은 지붕이 이어지는 칭다오시 구시가지의 모습은 독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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