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

중국 칭다오

울산 금수강산 2006. 12. 5. 18:04


과거사 정리?… 돈 되면 역사도 판다
침략국 독일이 만든 ‘칭다오 맥주’ 대표브랜드로 키워… 붉은 지붕 등 독일 시가지도 보존

1월 26일 오전 9시 중국 칭다오(靑島)항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 오후 5시 인천항을 출발해 밤바다를 달린 위동페리호가 칭다오 항구에서 천천히 접안을 시작했다. 칭다오항에서 출발한 도선사가 배로 올라오고 승객은 하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1등실 승객이 하선하고 다음으로 2, 3등실 승객이 하선을 한다. 그러나 3등실의 주고객인 보따리상들은 언제나 급하다. 틈만 나면 큼직한 짐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튀어나갈 태세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여객선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관에서 벌어지는 보따리상과 관리의 실랑이도 볼 만하다.

배에서 바라보면 칭다오항 왼쪽은 고층빌딩군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불그스름한 지붕의 낡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고층빌딩·빌라가 모여 있는 신시가지는 ‘동해로’(한국에선 서해지만 중국에선 동해가 된다)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동해로 주변은 판자촌 지역이었지만 중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이곳을 개발하면서 주민을 내륙으로 집단이주 시키고 고층빌딩군을 건설했다. 신시가지만 보면 서울과 별 차이가 없다. 그만큼 볼거리가 없다는 말이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작은 어촌마을

칭다오의 볼거리는 구시가지에 몰려있다. 여행객을 태운 버스가 칭다오 구시가지를 들어설 무렵이면 조선족 여행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이 시작된다. “칭다오는 중국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도시 풍경을 갖고 있습니다. 100년 전 열강들이 중국을 두고 경쟁을 벌일 때 칭다오는 독일이 차지했습니다. 때문에 칭다오시에는 유럽식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고 ‘중국 속의 유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가이드는 자랑스럽게 얘기했지만 결국 중국에 남아 있는 외세침략의 흔적이다. 칭다오는 19세기 중반까지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국 상선과 해군이 칭다오항을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고 이 때부터 칭다오는 중국의 대표적인 상업도시로 거듭났다. 100여년 전 군함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항구를 가진 칭다오를 보고 군침을 흘리던 독일은 자국 선교사 2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1988년 칭다오를 조차했다. 그리고 이곳에 ‘작은 독일’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칭다오 시내 곳곳에는 독일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시가지의 독일식 건축물.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신호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정말 독일의 한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3~4층 높이의 나지막한 건물에 작은 나무창, 지붕은 모두 붉은 색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한 주홍색이다. 100년 된 건물이라서 그런지 집은 하나같이 낡았다. 여기에 1960~1970년대 한국에서나 봄직한 촌스러운 간판들이 덩그러니 붙어있다.


가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칭다오는 ‘홍와녹수남천벽해(紅瓦綠樹藍天碧海)’로 표현할 수 있다. 붉은 지붕, 녹색 숲,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붉은 지붕’이라는 표현은 정확하다. 지금도 구시가지에 짓는 새 건물에는 반드시 붉은 지붕을 올려야 한다. 도시의 바닥에도 독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곳이 많지만 곳곳에 주먹만한 크기의 돌을 박아 만든 돌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칭다오의 대표적인 독일식 건물은 옛 독일 총독부 건물. 1905년 만들어진 이 건물은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1957년 마오쩌둥 주석이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함께 이곳에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영빈관(迎賓館)으로 쓰고 있다. 독일 빌헬름 시대의 건축양식을 딴 이 건물에는 유리창, 시계, 식탁까지 당시에는 최고급 독일제품을 수입해 만들었다고 한다.

도사가 마신던 샘물로 맥주 만들어

건축물 외에도 칭다오에는 독일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100년 전 중국 땅에 발을 디딘 독일인에게 무엇이 가장 아쉬웠을까. 바로 맥주다. 맥주의 본고장에서 온 독일 해군장교들은 하얀 거품의 시원한 맥주 맛을 그리워했다. 본국에서 배로 운반해온 맥주로는 도저히 이들의 욕구를 채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칭다오 맥주(靑島酒·칭다오비지우)’다. 독일인은 본토의 맥주 제조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1903년 ‘독일맥주회사’를 설립했다. 다행히 칭다오에는 물이 풍부했다. 특히 칭다오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노산(老山)의 광천수’는 맥주를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시 중심지와 40㎞ 정도 떨어져 있는 노산은 해발 1133m로, 1800㎞에 이르는 중국의 해안에 인접한 산 중 가장 높다. 특히 노산은 도교의 발원지로 노자(老子)의 사당이 있고 당나라 때부터 도원(道院)이 많이 지어진 곳이다. 도사들은 이 산에서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도사(道士)들이 마시던 물로 맥주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얼마나 일품이었겠는가.

이런 칭다오 맥주를 두고 중국인들의 ‘허풍’은 절정에 이른다. 칭다오의 가이드는 “칭다오 맥주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노산의 광천수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많고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칭다오 시에서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맥주를 홍보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칭다오 맥주는 ‘노산 광천수’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가오훙잉(高紅英)씨는 “손님 중에 칭다오 맥주를 마시고 간염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자랑을 했다. 역시 중국이다.
하지만 20여년 전부터 칭다오 맥주의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노산 광천수를 포기한 지 오래다. 지금은 그냥 지하수를 검사해 사용한다고 한다.

노산 샘물을 둘러싼 허풍만 잠시 접어둔다면 칭다오 맥주 맛은 일품이다. 마실 때 텁텁하지 않고 상큼하며 뒷맛이 깔끔하다. 고씨는 칭다오 맥주 맛의 비결은 철저한 품질관리에 있다고 설명했다. “총공정사(수석 엔지니어) 1명과 10명의 공정사가 매일 오후 4시에 샘플링을 통해 맛을 검사합니다. 여기에서 걸리면 폐기처분합니다. 그리고 매일 품질검사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합니다. 그리고 제조기술은 당연히 비밀입니다.”

중국인은 독일이 남겨둔 외세침략의 유산인 칭다오 맥주를 폐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벌이의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했다. 독일이 물러난 뒤 칭다오 맥주는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1945년 국민당 정부가 인수하고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접수해 ‘국영 칭다오 맥주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칭다오 맥주의 주식 44%는 중국 정부, 27%는 버드와이저, 나머지는 우리사주 형태로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철저하게 자율경영을 보장한다.


맥주생산량, 미국 이어 중국이 2위

중국 내에서 칭다오 맥주의 위상은 우리나라 술 회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개방 열풍과 함께 홍콩증시에 최초로 상장한 중국 기업이 바로 칭다오 맥주다. 상하이 증시가 출범한 지 2년 만인 1993년 8월에 상하이 A증시에 상장했다. 칭다오 맥주는 2003년에는 중국 10대 브랜드에 포함되기도 했다. 주룽지 총리 역시 “저장(江)성 서호의 룽징차(茶)와 산둥(山東)성 칭다오의 칭다오 맥주가 중국의 2대 국가 브랜드”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에서 칭다오 맥주의 비중은 높다.

현재 중국의 맥주 생산량은 미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맥주 브랜드는 500여개에 달하지만 칭다오 맥주는 중국 내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또한 미국에 가장 많이 수출되는 중국 맥주가 칭다오 맥주다. 현재 세계 20여개국으로 수출되고 있고, 맥주의 본고장 기술로 만든 만큼 유럽에서도 인기다. 중국 어딜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맥주는 칭다오 맥주가 유일하다. 2000년 이후 중국에는 90여개의 세계 맥주회사들이 13억 인구를 노리고 시장진입을 시도했지만 칭다오 맥주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생산 초기 칭다오 맥주는 일부 귀족이나 독일인만 마실 수 있었던 귀한 술이었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술이 됐다. 한국에도 2001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해 맥주 전문점이나 고급 중국음식점에서는 칭다오 맥주를 마실 수 있다. 1991년부터는 날씨가 무더운 8월 중 2주 동안 ‘칭다오 맥주 축제’가 열린다. 세계 20여개 브랜드가 참여하고 100만여명이 이 축제를 즐긴다. 또 칭다오 맥주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칭다오 맥주 박물관’은 관광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박물관에는 독일인이 공장을 세울 당시 사용했던 맥주 제조 기계가 전시돼 있다. 당시 사용했던 독일 지멘스(Simens)사의 모터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도 독일에 침략받았던 역사는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장사꾼 중국인에게 아픈 역사보다는 당장의 돈벌이가 우선이다. 아픈 침략의 역사도 돈이 된다면 팔아먹겠다는 중국인의 상술을 확인한 곳이 바로 칭다오였다.

붉은 지붕이 이어지는 칭다오시 구시가지의 모습은 독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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