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사진 중에서 가우디가 설계했던 성가족 성당의 내외부 모습과 그의 집의 아름다운 모습들까지 소개합니다.
우선 성가족 성당은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Antonio Gaudi y Cornet)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감독을 맡았는데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 3월 19일(성 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였으며 나머지 부분은 2004년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 중에 있고 교회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수 없다고 합니다.
이 성당의 건축양식은 입체기하학에 바탕을 둔 네오고딕식으로 원래는 가우디의 스승이 건축을 맡았으나, 1883년부터 가우디가 맡으면서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전체가 완성될 경우 교회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170m 정도이고 크게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뿐이었고 나머지 두 개의 파사드 수난과 영광의 파사드중 수난의 파사드는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되지 않았답니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하며 모두 100m가 넘는답니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 세워지는데
재료는 모두 석재였으며 가우디가 죽은 뒤 1952년까지는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1953년부터 건축을 재개하였으나, 돌이 부족하여 그 뒤에는 석재 대신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탑의 모양은 보는바와 같이 옥수수처럼 생겼고, 내부의 둥근 천장은 나무처럼 생긴 기둥이 떠받치고 있으며 천장은 별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성당 건축에 필요한 자금은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진행 속도에 한계가 있어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으나 가우디 건축의 백미(白眉)로 꼽히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 안토니 가우디 코르네 Antoni Gardi Cornet는 1852년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까딸루냐 지방에서 구리세공업을 하는 부친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 가깝게 놀이하며 지낼만한 친구도 없었으며, 마땅한 놀이기구도 없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모든 자연이 친구이자 놀이기구가 되었다.
가우디의 생가는 도시에서 좀 떨어진 시골이었다. 그곳은 지중해 연안으로 자연환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경이롭기까지 한 곳이다.그는 이곳에서 자연과 벗이 되었으며 자연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이해했다. 하늘과 구름, 물과 바람, 나무와 식물, 동물과 곤충, 산과 바위등 여러 가지를 보며 훗날 그는 이를 건축언어에 접목해 갔다.
가우디는 레우스지방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삼촌에게로 가서 대장간일을 어린시절에 배웠다. 여기서 가우디는 철을 불에 넣고 꺼내 망치로 두들겨서 철을 단련시키는 단철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주조술과 석고로 본을 뜨는 방법까지 배우게 된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에우달도 푼트에서 건축설계와 시공에 관한 실무적인 일과 건축자재의 특성들도 함께 배운다. 이것이 후에 가우디가 맡은 일들을 수행하는데 있어 필요한 목수, 주철공 등 건축관련 인부들과의 관계설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가우디는 한번 인연을 맺은 기술자들과는 끝까지 함께 일을 했으며, 그들이 나이가 들어 일을 못할 시에는 그 자제(도제제도에 의한 전수자)들과 일을 함께 했다. 따라서 모든 작업을 하는데 그들도 가우디의 감각과 뜻을 이해했고, 가우디는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할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