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계획을 세울 때면 아직도 애들처럼 가슴이 설렌다. 계획 중인 대상지를 머리 속에 그려보며 훈련 산행을 하는 것도 즐겁다. 시집간 딸애가 묻는다. “아빠는 고산등반이 즐거우세요? 아니면 도전에 의미를 두세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생각해본다. 다 맞는 말이다. 고산등반은 준비할 때는 즐겁고, 산행 자체는 나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며, 성공적인 산행 후에는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다. 이 성취감은 힘든 산행일수록 오래 간다.
킬리만자로는 그 높이와 강수량, 기온, 동식물의 분포에 따라 전혀 다른 5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데, 대개 1,000m 단위로 그 모습이 바뀐다. 기온은 200m마다 1°C씩 내려가고, 강수량은 해발 1,800~2,800m대인 열대우림지대에서 피크를 이루고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해발 800~1,800m대의 아래쪽 낮은 지대는 목초·경작지대로 가축을 위한 목초지와 농작물 경작지로 이용된다. 강수량은 산기슭 평원지대는 연간 500mm(우림지대와의 경계는 1,800mm)로 수량이 풍부한 위쪽의 우림지대에서 지하로 스며 내려온 물이 비옥한 화산흙과 함께 농작물을 키운다. 대우림지대는 해발 1,800~2,800m대로, 강수량이 연간 1,000~2,000mm다. 동식물의 분포가 가장 풍부한 지대로서 킬리만자로 중간 1/3 높이에 푸른 숲이 산을 넓게 빙 둘러싸고 있어 멀리서도 숲의 아름다운 띠를 볼 수 있다. 킬리만자로 수원의 96%가 이곳에서 흘러나온다. 풍부한 강수는 두꺼운 낙엽층에 의해 흡수되고, 흙과 구멍 난 용암석으로 흘러들어가 아래쪽에서 샘으로 솟아난다. 이 지대는 습기와 고도 때문에 구름이 많이 끼고 해를 가려 수분이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습도가 매우 높고 안개비가 자주 내린다. 낮 기온은 15~20°C이나 밤에는 춥다. 이곳은 원숭이, 노루 등 야생동물들과 새들의 보금자리이나 깊은 숲에 몸을 숨기고 있어 잘 볼 수는 없다.
산악초원지대는 해발 2,800~4,000m대로, 강수량이 연간 530~1,300mm로 관목과 덤불과 풀들이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식물은 세네시오인데, 5m 높이까지 자랄 수 있고, 목질의 큰 줄기 위에 양배추 모양의 잎사귀를 마치 왕관처럼 쓰고 있다. 기온은 서늘하고 날씨는 우림지대 경계부의 잦은 안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맑다. 3,000m 이상에선 결빙이 되나 낮에는 햇볕이 강렬하여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이곳에선 쥐와 같은 작은 동물과 이들을 잡아먹는 고양이들이 서식한다.
산악사막지대는 해발 4,000~5,000m대로, 연간 강수량이 250mm이다. 매일 매일이 낮은 한여름이고 밤은 한겨울이다. 낮에는 40℃까지 기온이 치솟으며 강렬한 직사광선으로 지표의 물이 거의 모두 수증기로 날아가 버린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그나마 흙속에 남아 있던 물은 얼어붙어 팽창하여 흙을 밀어 올려 식물의 뿌리를 노출시키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직 생명력이 질긴 이끼 같은 것만이 생존할 수 있어 용암석에 붙어 자란다. 정상 극지대는 해발 5,000m 이상의 고지대로, 연간 강수량이 100mm 이하다. 이 지대는 극지와 같은 기후로 밤에는 얼어붙도록 춥고 낮에는 태양의 직사광선이 내려쬔다. 대기 중 산소는 평지의 반으로 줄고, 지표에는 물이라곤 전혀 없고, 물기가 있다면 얼음과 눈으로 얼어붙어 있다. 5,000m 이상에서 살 수 있는 동물은 까마귀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1926년 이 지역 선교사인 로이쉬가 눈속에 묻혀 있는 표범의 시체를 발견하고 기념으로 한쪽 귀를 잘라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1952년에 헤밍웨이가 쓴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표범의 시체는 아마도 이것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킬리만자로가 위치한 탄자니아는 한반도의 4배가 넘는 국토에 인구가 2천2백만 명이며, 그 북부지역은 가장 오랜 인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탄자니아는 1차대전 이후 1961년까지 영국의 신탁통치를 받은 탓인지 등반 지원조직이 잘 되어 있는데, 네팔(역시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음)과 유사하게 산악가이드, 쿡, 일반 포터로 분류되고, 산악 가이드는 원정등반대와 같이 정상까지 동행하고 포터들은 따로 짐을 지고 산장까지 이동한다. 샤가족은 킬리만자로를 정복할 수 없는 산이라고 하였다는데, 1889년 10월6일 한스마이어가 키보의 정상인 우후루피크를 초등하였다. 킬리만자로 정복은 우후루피크의 등정을 의미하지만 길만스포인트까지만 올라도 현지에서는 정복으로 인정한다(실제 현지에서는 우후루피크 등정시는 검은색 표시 인정증을 주고, 길만스포인트 등반 시는 초록색 표시 인정증을 준다). 아프리카 말라리아 한국 것보다 치명적 탄자니아는 풍토병인 황열병과 말라리아의 발생지이기 때문에 예방이 필요하다. 황열병 예방주사는 적어도 출발 전 4주 전까지는 맞는 것이 좋은데, 부작용이 주사 맞은 지 3주 후에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보다 훨씬 치명적이어서 라리움이란 예방약을 출발 1주 전부터 귀국 4주 후까지 1주일마다 한 알씩 계속 복용하여야 한다. 킬리만자로 등반에는 마랑구, 쉬라, 음웨카, 음부웨, 마차메, 레모쇼 등의 6개 루트가 있다. 이중에서 마랑구 루트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루트인데, 우리 팀도 마랑구 루트를 등반로로 택하였다. 해발 1,980m에 있는 마랑구 게이트가 시발점으로, 정상까지 등산로가 잘 나 있고 적당한 지점에 산장이 있어 무리 없이 등반할 수 있다. 인천공항 출발부터 꼬박 2일이 걸려 산행기점인 마랑구 게이트(해발 1,980m)에 도착하여 현지 산악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만다라 산장을 향하여 등반을 시작한다. 등산로는 두 길이 나 있는데, 하나는 예전에 자동차도 다녔다는 길로 그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훼손이 많이 되어 현재는 포터들이 사용하고, 등산객들은 산악가이드와 함께 시냇물을 따라 난 숲속 등산로를 이용한다. 두 길은 만다라 산장에 오르기 1시간 전에 합쳐진다. 질퍽거리는 길,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 수량이 풍부한 계곡물은 열대숲의 전형이다(사진3). 오르는 길에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누구나 “잠보”라고 말하면서 서로 인사한다. 네팔의 ‘나마스떼’처럼 정감이 가는 말인데, 둘 다 ‘안녕’과 같은 뜻이다. 이곳에서 ‘잠보’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폴레폴레’인데, 이는 ‘천천히’란 뜻으로 고산등반 제1원칙인 절대 서두르지 말고 고소적응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올라가라는 뜻이다. 오르막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걷다가 약간의 경사면을 오르니 앞이 트이면서 삼각지붕의 산장들이 나타난다. 오늘 종착지인 해발 2,700m에 위치한 만다라 산장이다. 오늘의 기온은 14~22℃이고, 마랑구 게이트에서 12km,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만다라 산장을 출발하여 숲길을 얼마간 걷다가 보면 관목과 덤불이 낮게 자라고 있는 초원에 이른다. 하얗고, 노란, 또는 보라색 풀꽃들을 감상하면서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보하듯 천천히 오르다 보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나무다리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그 모양새가 야자수 같기도 하고 큰 선인장 같기도 한 세네시오가 우뚝우뚝 서 있고, 그 너머로 뿌연 시야 속에 호롬보 산장이 보인다. |
고소적응 위해 호롬보 산장서 1박 더해
만다라 산장에서 해발 3,720m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까지는 15km, 6시간이 걸린다. 까마귀가 자유로이 날고 때로는 산장 지붕 위에서 쉬기도 한다, 호롬보 산장에서는 흰 눈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킬리만자로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산장 문을 열면 계곡의 물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노래처럼 들리고, 계곡을 따라 집단으로 죽죽 서있는 세네시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네시오는 특히 습지나 계곡 주변에 집단으로 서식한다. 호롬보 산장 주위가 킬리만자로에서 가장 아름답다.
고소적응을 위해 호롬보 산장에서 1박을 더 하면서, 얼룩말바위(3,980m)를 지나 마웬지봉과 키보봉의 중간지대인 안부(4,300m)까지 올라갔다 다시 산장으로 귀환하는 일정으로 여유 있게 하루를 보낸다. 일행 중엔 벌써 두통, 구역 등의 고소증상이 나타나는 대원이 있다. 이 분은 얼마간 안정하고 나니 증상은 호전되었으나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지라 이곳 호롬보에서 정상을 갔다 오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도록 조치한다.
▲ 얼룩말 바위.(왼쪽) 마지막 물 웅덩이 지점.(오른쪽) |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 산장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두 길이 있다. 오른쪽 윗길은 돌이 많은 거친 길로서 안부와 마웬지봉쪽으로 돌아가는 다소 힘든 길이고, 왼쪽 아랫길은 보다 쉽고 짧은 산장까지 직접 가는 길이다. 우리 팀은 왼쪽의 직행로를 택하였는데 키보봉 정상부를 정면에 바라보면서 완만한 경사길을 천천히 올라가면 된다.
마랑구 루트의 마지막 물웅덩이가 있는 지점을 지나면 풀들은 점차 없어지고, 안부를 지나면서부터는 완연한 황무지가 펼쳐지는데 뒤로는 마웬지봉이 황량한 사막 위에 서있다. 나는 다른 대원들이 먼저 출발한 것으로 착각하고 본대를 따라 붙는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올랐는데 어느덧 산장이 보이는 것 아닌가? 아뿔싸 본대보다 2시간 이상 빠른 ‘폴레 폴레’ 아닌 ‘빨리 빨리’의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이다.
이곳은 호롬보 산장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다. 바람 부는 삭막한 산자락 위에 60개 침상을 갖춘 산장이 군대막사처럼 덩그렇게 서 있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장인 키보 산장(해발 4,703m)이다. 까마귀들은 이곳에서도 힘차게 날고 있다.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 산장까지 15Km, 일반적인 소요시간은 6~7시간이다. 내일 0시에 정상을 향해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7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 본다.
서너 시간 눈을 붙인 후 밤 11시에 일어나 누른 밥을 몇 술 떠먹고 정상공격 준비를 한다. 고소내복, 파일재킷, 발라클라바, 고소모, 그리고 우모복으로 무장하고 마호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다. 헤드랜턴 불빛을 발아래 비추며 0시15분 키보 산장을 출발한다.
▲ 우후루 피크 오르기 직전의 눈서릿발. |
몇몇 대원들은 고소증상으로 더 오르지 못하고 하산한다. 이곳에서 화산분화구를 우측으로 내려다보면서 분화구 벽을 따라 2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마침내 킬리만자로 최정상 우후루피크에 닿는다.
해냈다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주위로 칼날 병풍을 두른 것 같은 거대한 빙하가 적도의 태양 속에서 희게 빛나고 있다. 이것이 헤밍웨이가 감탄하였던 ‘태양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흰 산’ 바로 그것이던가? 정상에는 쌍십자가 모양의 나무표지판이 서있는데 ‘축하합니다. 당신은 여기 아프리카 최고점 우후루피크, 5895m에 와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다. 해냈다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사진기에 그 감동을 담는데 직사광선으로 피사체는 화이트아웃 된다.
20분 가량 머문 후 오전 9시30분에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는 햇볕이 내려 쪼여 거추장스러워진 우모복을 벗어 배낭에 넣고 고어텍스 방풍상의로 갈아 입는다. 정상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길만스포인트까지 내려온 후부터는 화산재의 급경사면을 스키 타듯 미끄러지면서 키보 산장까지 쉬지 않고 내려온다. 올라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 우후루피크에서 마주 보이는 분화구 북쪽 빙하. |
화산재의 먼지와 태양 속에서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쉰 탓에 입안이 바싹 말라 있어 물도 삼키기 힘들다. 목구멍을 먼저 축인 후 생수를 한 모금 삼키고 나서야 물이 넘어간다. 시원한 생수 두 컵을 들이키니 고갈된 동력이 다시 솟아나는 듯하다. 1시간 휴식 후 호롬보 산장을 향하여 느긋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행복감에 젖는다.
비아그라는 고산병 예방의 특효약
비아그라는 남성 발기부전의 치료제로 각광을 받는 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아그라가 고산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는 2004년부터 외국 문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작용기전은 다음과 같다.
고산에서는 대기의 산소분압이 떨어지므로(해발 5,000m 이상에서는 절반 이하) 우리 몸에 저산소증이 오게 되고 폐동맥이 수축하게 된다. 비아그라는 수축한 폐동맥을 확장시켜 줌으로써 몸속에 산소의 공급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고산병 예방에 많이 이용되는 다이아목스는 알칼리 성분을 소변으로 많이 배출시킴으로써 체액을 산성화시키는데, 이때 인체는 피속의 적혈구와 결합된 산소를 조직 속으로 더 많이 유리시켜 조직의 산소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 약은 이뇨작용으로 소변이 자주 마렵고 손끝이 저리는 등의 부작용이 있고 그 효과도 비아그라에는 훨씬 못 미친다.
문헌에는 비아그라 50mg을 하루 1번 복용으로 고산병 예방 효과를 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그 작용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으므로 25mg씩 하루 2번 12시간마다 복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비아그라는 협심증 같은 심장병이 있는 분은 복용하면 위험하고, 고혈압 약을 먹고 있는 경우에도 같이 복용하면 혈압을 더 떨어트릴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국산 자이데나도 비슷한 성분이므로 동등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미산 남면 (0) | 2007.01.27 |
---|---|
오세아니아주(칼스텐츠(Carstensz·4,884m)) (0) | 2007.01.27 |
장가계, 원가계,천문산 (0) | 2007.01.27 |
중국(운대산) (0) | 2007.01.27 |
철차산 / 곤륜산 (0) | 2007.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