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과 오한, 구토,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은 보통 지상 산소량의 60%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오는 고소의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4,500~5,000m대의 많은 고개와 열악한 도로조건은 이에칭에서 아리까지 신장공로 1,100km 여행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 언덕의 불탑에서 바라본 수미산(카일라스). |
서부 티벳 트레킹 기점 아리벤사처
아리벤사처는 바로 배낭과 용기만을 가지고 서부 티벳으로 들어가려는 세계의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운이 좋았는지 도착하자마자 3일에 한 번씩 떠난다는 침대버스가 여행자들의 짐을 싣고 있었다. 아리행 버스는 저녁 8시에 출발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깐 잠이 들었는데 마치 내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 차가 해발 4,000m가 넘는 고개를 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2명의 운전사가 교대로 운전하는 버스는 새벽 고원의 아찔한 풍광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면서 하루 종일 티벳 고원을 달렸다. 차가 멈출 때마다 밖으로 나와 몸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속도를 내서 걸어보고 때로는 조금씩 뛰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올랐고 어지럼증세로 몸이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 신장공로 상 최고지점인 지에샨다반의 경계석. 햇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색깔이 극명하다. 이것은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
지에샨다반 고개를 넘어서자 차는 점점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4,700m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높은 고개는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 날부터는 고원에 몸이 적응되었는지 식욕도 생기고 생리현상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산이나 구릉들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하고, 햇빛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똑 같았지만 기온은 그보다 더 낮았다. 여행객들은 잠을 자거나 무표정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지만, 모두들 힘들고 지친 표정들이다.
▲ 언덕에서 내려다본 아리. 상업적 교역도시이자 변방의 군사적 요충지다. |
이에칭에서 출발하여 4,500m 이상 고개를 다섯 개나 넘으며 밤낮으로 달리던 버스가 아리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리는 서부 티벳의 중요한 상업적 거점이자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수비대가 주둔하는 군사적 요충지이기에 외국인 여행객에게는 늘 공안국(PSB) 경찰의 감시가 뒤따랐다.
그 날도 아리에 도착하자마자 사복경찰과 반갑지 않은 조우를 해야만 했다. 차에서 내려 숙소를 정하기 위해 길을 걸어가던 나는 공안의 제지로 검문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내일 아침까지 공안국으로 와서 300위안의 벌금을 내고 티베트 여행허가서를 받으라 하였다.
벌금 내고 티베트 여행허가서 받아
아리에서 이틀을 묵고 월요일 아침 8시에 신샨(수미산)을 거쳐 푸랑(普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피로가 완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별다른 수고 없이 다른 교통편을 구하지 않고 쉽게 버스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힘이었다.
아리에서 다르첸(4,560m)까지 약 140km 구간은 다른 행성에 도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국적이고 영적이었다. 아리를 출발한 버스는 몬순성 폭우로 인하여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다음날 점심 때가 되어서야 다르첸에 도착하였다.
티벳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하면 구를라만다타(Gurla Mandhata) 또는 캉린포체(Kang Linpoche)라고 한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현상과 형상을 그대로 지상에 재현한 만달라(Mandala)로 여기며, 수미산 자체를 부다(Buddha)로 보고 있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수많은 티벳인들이 이곳으로 순례를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Kailash)라고 부르며, 주봉을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라고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이나교와 티벳 토속종교인 뵌교의 성지이기도 하니 그 영적인 느낌이야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어디선가 순례자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코라(순례)를 시작하였다. 멀리 마나사로바 호수와 건너편에 우뚝 솟은 구를라만다타(7,728m)가 내뿜는 은색 빛은 마치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안내자 같았다. 현지인들은 아주 이른 새벽에 순례를 출발하여 하루만에 수미산 코라(순례)를 끝낸다. 하지만 보통의 외국인 트레커나 순례자들은 아무리 건강하고 잘 걷는 사람이라도 2박3일은 걸려야 약 57km의 코라길을 돈다.
이번 코라에는 두 군데의 사원을 반드시 들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길 입구에 세워진 마니차를 돌리고 본격적으로 계곡 안쪽으로 들어섰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큰 앞마당이 보이듯 넓고 깊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따금 늦게 출발한 티벳 순례자들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갔다. “다시델레(Dhasi Dhele)”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들 역시 똑같은 말로 인사를 하였다.
▲ 추쿠 곰파.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길이 순례길이며 반대편 절벽 위로 수미산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
2시간 정도 걸어가자 멀리 불탑과 첫 번째 사원인 추쿠 곰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곰파는 13세기 카규파라는 불교의 한 종파가 세운 사원이라고 했다. 사원은 예상했던 대로 높은 곳에 있어 급한 경사면을 따라서 올라야 했기 때문에 가는 동안 몇 번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는지 모른다.
▲ 기이한 절벽의 모습. 티베트인들은 이러한 바위의 형상이 보살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
사원을 내려오자 하늘을 덮었던 구름들이 빠르게 동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쪽으로부터 아침에 구를라만다타를 은빛으로 빛나게 했던 태양과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주변 색깔이 순식간에 변한다. 구름에 가렸던 계곡 좌우의 봉우리들도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법과도 같았는데, 마치 영화의 필름을 빠른 속도로 돌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티벳 고원은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그림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색깔 차이가 분명하였으며, 그 강렬한 색감이 티벳의 탕가나 건물의 채색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점심 식사를 비스킷과 물로 해결하고, 다시 출발하여 4시간 정도 걷자 첫 번째 숙소이자 두 번째 사원인 디라북 곰파에 도착하였다. 이 곰파 역시 카규파가 지었다고 하며, 수미산 북면이 잘 보인다. 일찍 출발하여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그랬는지 오후 4시30분에 곰파 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는데, 마침 순례자들도 없는지라 쉽게 방을 잡을 수 있었다.
한여름 티벳에서 눈을 만나다
다음날 일찍 숙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나는 깜짝 놀랐다. 전날까지만 하여도 간간히 비를 뿌리던 날씨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새벽부터 수많은 순례자들이 올라오련만 오늘은 사람이 없었다. 서둘러 출발 준비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눈 때문에 걷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돌마라(5,700m) 고개를 오르기 위해서는 일찍 출발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침 식사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돌마라 고개까지는 급한 경사가 세 번이나 나타나고, 마지막 고개를 오를 때가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걷고 쉬기를 반복하자 마침내 저 멀리 돌마라 고개가 눈앞에 나타났다. 길만 쳐다보고 걸어가던 나는 울긋불긋한 타르초가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서야 마침내 정상에 왔음을 알았다.
▲ 구를라만다타봉.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
한 여름에 눈밭을 걸어왔다는 신기함과 돌마라 고개가 주는 영적인 느낌이 온 몸을 압도하였다. '돌마라'란 사람의 욕심이나 집착, 욕망 등을 모두 버리고 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고개를 넘어서자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눈발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하늘과 산은 구름과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처음 출발했던 장소와 똑같이 큰 하천이 흐르고 양쪽 옆으로 높낮이가 서로 다른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복도처럼 생긴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중간에 티벳인 천막 휴게소에 들러 야크버터차로 몸을 녹인 후 마지막 곰파인 주틀북 곰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틀북 곰파에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럽고 하천이 범람하여 좀 늦게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사원으로 올라갔다. 이 사원은 그 유명한 티벳의 현자이자 승려인 밀라레파의 동굴이 있는 곳이다. 그곳 승려의 배려로 차 한 잔을 마시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 밀라레파의 동굴을 보았다. 동굴 옆으로는 그가 명상하는 모습을 부다와 함께 모시고 있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원래 불교가 티벳에 들어올 때 토속종교였던 뵌교와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사원에서 불교도인 밀라레파와 뵌교의 사제인 나로뵌충 간에 힘겨루기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추쿠 곰파에서 내려온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지 않고 바로 걷기 시작하여 밤 9시50분쯤 다르첸의 숙소에 도착해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수면에 들어갔다. 다음날 수미산 안쪽 코라를 하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 방문만에 수미산 남면 조우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날씨는 예감했던 대로 약간의 흰 구름만 떠다닐 뿐 깊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수미산 남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 틀림없다. 간단한 옷차림으로 출발하여 한 30여m의 경사를 올라가자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곡의 하천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계곡은 말 그대로 꽃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마치 생화로 장식한 융단과 같았는데,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빛까지 더하니 한 폭의 그림이다.
▲ 웅덩이에 비친 하늘. 환상적이다 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 |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가던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계곡 저 멀리로 마침내 수미산 남면을 봤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다르첸에 왔었지만 정작 한 번도 수미산 남쪽 면을 보지 못하고 간 심정이야 어떠했겠는가. 마침내 세 번째 와서 그 원을 풀게 된 것이다.
구릉을 따라 올라가자 꼭대기에 펄럭거리는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끝은 불탑에 연결되어 있었다. 불탑에 이르자 나는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수미산 남면이 완벽하게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수미산 정상의 신성하고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기 전에 코라를 마쳐야 하기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언덕 밑으로 흐르는 도랑을 건너 셀룩 곰파에 들렀다. 사원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사원 마당 구석에 붉은 옷을 입은 티벳 여인이 앉아 있을 뿐이다. 결국 그녀의 도움을 받아 사원 안으로 들어가 탕가와 불단 등을 볼 수 있었다.
▲ 셀룩 곰파. 여스님이 낯선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
안쪽 코라를 마치고 다르첸의 숙소로 돌아오자 마치 모든 소원을 풀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는 라사로 떠날 일만 남았다. 다르첸에 온 차들은 거의 모두가 라사나 네팔에서 여행객들과 계약하고 온 차들이다. 따라서 차를 히치하이크하거나 배낭여행자들끼리 뭉쳐서 차를 구해야 한다. 귀향길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목표를 이룬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 눈에 덮인 순례길. 앞서가는 순례자가 아득하기만 하다. |
혼자 떠난 세 번의 수미산 코라. 그리고 이번까지 두 번의 서부 티벳 여행 모두가 극적이었다. 하지만 특히 이번 코라에서 수미산 남쪽 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어느 산이나 트레킹 코스이든지 그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계획을 짜고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배낭을 메고 혼자 떠나보십시오. 그렇다면 평범한 여행에서 얻을 수 없는 몇 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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