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브라 벽 앞에서 내려 에메랄드그린 빛 호수를 따라 도보 캐러밴을 하고 있다. 뒤로 콜의 안부에는 광산이 있다. |
신석기의 삶 간직한 오지마을 거치는 정글 캐러밴
말이야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았다만, 세 번째에도 등반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스스로 큰 실망을 할 것 같으면서도 ‘안되는 게 어딨어! 될 때까지 가보자’는 비장함으로 비행기에 탔다. 허나 막상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도착하니 이리안자야(Irian Jaya)로 날아가야 할 일정은 이틀이나 미루어졌다. 내일 스케줄을 오늘 확실히 알 수 없으니,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혼자 푹푹 찌는 더위 속에 애간장이 녹아들어간다.
첫 번째 칼스텐츠 행은 작년 11월, 이리안자야 섬의 남반구 해안에 위치한 티미카(Timika)라는 작은 도시의 호텔에서만 머물다 왔다. 처음 준비된 차량 캐러밴 일정이 광산측 사람들의 반대로 인해 급하게 헬기 일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매일 2~3시간씩 무겁게 쏟아지는 소낙비의 처마 밑에 앉아 베이스캠프로 가는 헬기를 타기 위해 구름 없는 맑은 날을 기다리다 일정은 끝나버렸다.
▲ 시낙에서 일라가로 이동 중인 포터들의 정글 캐러밴 행렬. |
솔직히 두 번째 일정은 나에게 엄청난 기대를 주었었다. 칼스텐츠의 매력은 정글 캐러밴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겁게 쏟아지는 소낙비가 시원하게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흙탕물에 샤워를 하며 걸으면서도 너무 즐거웠다. 작은 마을 하나 하나 지나치며 만난 원주민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들은 정글 캐러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오지라면 둘째 서러운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난 오리지널 산골 출신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처럼 전쟁이 나도 모르고 지나가긴 마찬가지인 동네다. 그런 내가 세계의 오지로 향한다는 설렘은 히말라야 등반을 처음 떠날 때 못지않았다. 칼스텐츠의 원시림 캐러밴은 아직까지 신석기 시대 삶의 방식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 정글 캐러밴을 하려면 말라리아, 황열병, 콜레라 등의 풍토병 예방접종을 하고 접근해야 한다. |
그러나 세계의 오지를 향한다는 설렘은 등반할 수 없다는 큰 슬픔으로 되돌아왔다.
이토록 몇 년 동안의 등반금지가 풀렸으면서도 실패가 번복되는 이유는 칼스텐츠가 안고 있는 세계 최대의 구리광산 때문이다. 구리뿐만 아니라 금과 은의 보유량도 어마한 양이라고 한다. 이런 광물자원들의 현 실태를 외국인들에게 노출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등반을 통제하는 것이다.
한 여행객이 실크로드를 도보 횡단할 때 마을주민이 자신이 들고 다니는 지도가 실크로드 끝의 보물창고를 찾아가는 지도라고 생각하여 빼앗으려 하였지만, 정작 그 지도 위엔 ‘여행을 위한 길’만 있었던 것이다. 등반가들에겐 ‘칼스텐츠로 가는 길’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번 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9월 말부터 잡혀 있던 일정이 두 달 후인 11월에 진행된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준비했으면서도 인도네시아 대행사에서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일정을 변경하였다. 본래는 자야푸라에서 와메나로 간 후 헬기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자카르타에서 국내선으로 자야푸라에 가니 와메나로 가는 것은 취소되었단다. 자야푸라에서 군부대에 본인들의 여권을 직접 허락 받은 후 티미카에서 헬기를 타고 가야 한다 하여 전체 일정의 3일을 허비하고 티미카에 도착하니 차량이동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11월10일 점심 무렵 티미카에 도착해 광산을 출입하는 광부들, 덤프트럭기사들이 쉬어 가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방안에서 다음 지시사항이 전달되기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고, 자정이 되자 차 소리가 났다. 미리 전해진 검정 재킷 유니폼과 눈과 입 구멍만 뚫린 국방색 발라클라바를 쓰고 트럭에 탔다. 사진과 비디오 촬영은 절대 금지라고 하여 카메라는 배낭 속에 숨겼다.
하루에 4,200m BC 오른 뒤 이튿날 등정 강행
▲ 칼스텐츠의 가장 난코스로 불리는 오버행을 주마링하고 있는 외국대원들. 뒤로 이스트 칼스텐츠 정상부에 열대지방의 만년설이 보인다. 먼저 올라간 현지 가이드는 고소증세로 주마링을 하다 벽에 구토를 했다. |
오후 4시에 한 대의 트럭이 다시 우리를 싣고 광산터널을 달렸다. 말이 터널이지 터널 안엔 여러 갈림길과 이정표가 있었다. 내가 본 가장 긴 터널이다. 시속 20~40km 속력으로 거의 30분을 달렸다. 급하게 꼬부라지는 벽면에 부딪힐 거 같으면서도 운전기사는 능숙하게 행진했다.
밤을 꼬박 새워 제브라라는 벽 앞에 내려 20kg 카고백을 짊어지고 베이스캠프까지 직접 짐을 나르게 되었다. 네팔에서 카고백을 등에 지고 나르는 셰르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엔 포터가 없어 3시간이 걸리는 베이스캠프까지 직접 짐을 날라야 했다. 내려올 땐 1시간 반 거리인 가까운 곳까지 차가 들어가도록 흙이 파헤쳐져 있는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올해 거쳐 간 몇몇 팀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많은 등반비를 지불하고 오는데 이 모양이니 속이 상했다.
점심 무렵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 팀의 인원은 7명이었다. 현지 인도네시아 가이드 2명과 쿡 1명이 동행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오(Marie)는 나이가 제일 많고, 미국에서 온 릭(Rick)은 좀 뚱뚱한 편이며, 모터사이클 선수 생활을 하느라 13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는 영국의 존(John), 그리고 키 작은 나까지 4명이 등반대원이다. 나만 여자였고 또 모두들 40~50대 남자였다. 더욱이 다들 체격 좋은 서양인들이라 키가 나보다 30~40cm나 컸다.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전부 7대륙 최고봉을 하고 있어서 저녁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7대륙의 산을 등반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아콩카구아를 등반하면서 맛보았던 멘도사의 말벡 와인에 흠뻑 취했고, 가격과 향이 너무 좋았으며, 아르헨티나의 스테이크 또한 최상급이라고 칭찬했다. 입 속엔 침이 솟았지만 우리 식탁 앞엔 4,200m 고도에서 양은냄비에 밥을 해 덜 익은 쌀밥과 두어 종류의 레토르트 식품뿐이었다. 비싼 등반비에 대해 더욱 화가 나고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등반은 90% 성공한 셈이다. 베이스캠프엔 에메랄드 빛 호수와 이스트 칼스텐츠쪽으로는 만년설이 쌓여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30분 캠프를 향해 출발했다. 한 번에 4,200m의 고도까지 올리고도 단 하루의 휴식을 통한 고소적응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다행히 컨디션이 무척 좋았고, 날씨 또한 전날 오후 내내 내리던 비 대신 하늘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무척 포근했다.
랜턴을 켜고 좌측으로 크게 돌아 바위 우측 끝으로 접근하니 1시간이 소요된다. 어둠 속에 시커멓게 시야를 가득 가로막은 커다란 암벽이 서 있다. 이곳에서 안전벨트와 헬멧을 착용하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등정이 목적인지라 노멀루트에 설치되어 있는 고정로프를 따라 등반했다. 로프 고정은 하켄과 볼트, 촉스톤이나 암각의 돌출부에 걸쳐져 있었다.
간혹 최근에 설치된 로프도 있으나 언제 것인지 알 수 없는 빛바랜 로프들에 몸을 의존하는 상황이다. 바위 질감이 무척 날카로와 맨손으로는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날 정도라 장갑은 필수적이다. 계단식 형태를 띠고 있는 암릉 등반에 간혹 너덜지대를 따라 걷기도 하는데 3시간 정도 바위를 오르다 보니 저 멀리 파헤쳐진 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모든 사람들이 올라오길 기다린다. 하루에 한 차례 꼭 비를 뿌리는 기후를 가진 이곳에 오전의 맑은 날씨가 사라지고 정상부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능선에서 30분만 가면 칼스텐츠의 최대 난코스라고 불리는 4~5m의 오버행 주마링 구간이 나온다. 주마링이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의 지체로 이곳에서 2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지막으로 내가 올라가려고 할 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급변하여 서둘러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번개가 지지직하더니 천둥이 크게 소리쳤다. 고압전선이 터져 불꽃이 이는 것 같은 번개 소리에 재빠르게 몸을 웅크려 바위 밑에 숨었다. 그렇게 큰 번개와 천둥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기는 처음이다. 두어 번 더 번개가 쳤고 바람 없이 함박눈이 계속 내렸다.
▲ 정상에 오르기 직전의 대원들. 오버행을 넘어서 정상까지 약 40분만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
지인들 마음이 금은보화보다 귀하게 느껴져
조금 먼저 정상에 도착한 존과 나는 이상한 소리에 헬멧과 모자, 배낭과 재킷을 하나씩 벗어버렸다. 알고 보니 번개는 칼스텐츠 피라미드의 정상을 강타했고, 정상에 남은 전류는 20여 분간 이유도 모른 채 온몸에 흘렀던 것이다. 세 번만에 어렵게 오세아니아주 최고봉 정상에 섰는데 번개 맞아 죽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박복한 건지 운이 넘친 건지 싶다. 산에선 어떠한 형태로든 위험은 도처에 존재한다.
▲ 정상 능선에 올라서서 올라온 길과 베이스캠프의 위치를 가리키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원들. |
정상에서 왔던 길로 똑같이 하강하는데, 나는 베이스캠프까지 3시간이 걸렸고 다른 대원들은 5~6시간 소요되었다. 하강길엔 비가 많이 내려 바위틈새로 홍수 같은 물이 퍼부었다. 잔돌이 많아 하강로프로 낙석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물먹은 자일에서 얼굴로 물이 튀었다.
이번엔 꼭 오르고 싶었다. 나의 소망과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셨기에 안전하게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할 수 있었고, 또 평범한 삶의 궤도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인 광산 속 어마어마한 자원들 가운데 내가 캐내어 올 수 있는 보석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떠난 등반이다. 내가 등반할 수 있도록 늘 도와주고 내가 안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고 걱정해 주는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마음들, 그 마음들은 어떤 금은 보화보다 더 귀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석들이다. 내가 캐어낸 가장 귀한 보석은 광산 가장 깊은 곳에 다시 묻어두고 돌아왔다.
글·사진 김영미 강릉대 OB
등반정보 | |
오스트리아의 하인리히 하러가 초등 암벽장비 철저…풍토병 예방접종 필수 칼스텐츠(Carstensz·4,884m)는 7대륙 중 오세아니아 대양주의 최고봉이다. 그린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이리안자야의 서반부는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 주다. 동서로 길게 뻗은 수디르만 산군에 위치해 있으며, 최고 봉우리인 칼스텐츠는 그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봉우리 이름은 1623년 탐험을 마치고 ‘열대지방의 얼음’이란 보고서를 쓴 네덜란드 탐험가 얀 칼스텐츠(Jan Carstenz)로부터 비롯되었다. 현지인들은 이 봉우리를 푼칵자야(Puncak Jaya)라고 하며 ‘등정의 영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칼스텐츠는 오스트리아의 하인리히 하러가 1962년 P. 템플의 가이드로 초등에 성공했다. 이들은 일라가에서 북쪽으로 접근하는 정글 캐러밴 경로를 택했고, 북면 루트를 오르는 데는 이 길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나 정글로 캐러밴을 할 경우 풍토병에 대비해 말라리아, 황열병, 콜레라에 대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등반보다 허가 절차가 무척 까다로운 산이며, 베이스캠프(4,200m)에 도착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티미카에서 접근하는 방법은 차량으로 광산을 통과하는 방법인데, 광산의 접근을 통제하기 때문에 출입허가에 어려움이 많다. 정글 캐러밴도 반란군들의 주둔으로 인해 접근이 어렵다. 최근엔 헬기로 BC까지 이동하는 경로가 이용되고 있다. 가장 안전하나 헬기 한 대를 대절할 인원이 확충되어야 하고 비용이 굉장히 비싸다. 헬기이동은 고소적응의 문제도 있고, 매일 같이 비가 오는 지역에서 안개가 끼지 않는 좋은 날을 기다리는 것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여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늘 비가 내리기 때문에 방수재킷과 방수바지와 방수가 되는 중등산화를 신으면 좋다.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는 비에 젖어도 마찰력이 좋아 등반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대신 날카로운 바위에 손을 다칠 수 있으므로 장갑을 착용하고 등반하는 것이 좋다. 낙석이 심하니 헬멧을 반드시 착용하고 등반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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