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이다. 모처럼 전기장판이 깔린 따스한 침대에서 잔 뒤 맞이한 새벽공기는 상쾌하고 몸도 가뿐하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 이불속으로 다시 몸을 웅크리며 뒹글어본다. 인기척에 잠에서 깨신 K선생님도 내 눈치만 살피며 현재 시각만 물어보시고 일어날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갑자기 7시 이전에 '흑룡담공원(黑龍潭公園)'에 입장하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배낭여행 자료가 생각났다. 6시 45분쯤 숙소를 출발하여 채 어둠이 가시지 않는 새벽길을 재촉해본다. 울긋 불긋한 색깔의 갖가지 모양을 한 전통 중국식 등(燈)과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쓰팡지에(四方街) 곳곳을 비추었던 어제 밤의 황홀함은 간데없고, 쓰팡지에 곳곳을 휘돌아 흐르는 개울가에 한껏 머리를 풀어헤친 수양버들 나뭇가지들만 바람결에 흔날린다.
|
|
강택민 중국공산당 주석이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이라고 한자로 휘갈겨 쓴,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지정 문화재 '리지앙고성(麗江古城)' 입구에서 쉼없이 돌고 있는 거대한 물레방아 2개를 지나갈 땐 매년 놀랄 만한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거대 중국의 힘이 느껴진다. 흑룡담공원(黑龍潭公園)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니 고성입구 물레방아에서 북쪽으로 뻗은 신대가(新大街)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될 것 같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도 목표지점을 비교적 잘 찾고 방향감각을 유지하던 나에게 리지앙 시내지도까지 있으니 공원입구를 찾는 것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내가 앞장서 걷고 K선생님이 뒤따른다.
|
새벽 손님을 태우기 위해 물레방아 근처에서 기다리는 택시들을 멀리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5분쯤 길을 채촉하다보니 차도 건너편에 꽤 너른 광장이 보이고 도로 우측엔 거대한 모택동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뒤따르던 K선생님은 이곳이 '홍태양 광장(紅太陽 廣場, Red Sun Square)'이라고 일러준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아니지... 요즈음 아이들이 알고 있는 메가패스 장군?) 동상보다 규모면에서 엄청 큰 모택동 동상은 언젠가 TV에서 본 북한 김일성 동상과 흡사해 보였다. 나중에 되돌아오면서 살펴보니 동상 뒤쪽 벽면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서(秒書)체로 씌여진 모택동 자필 글씨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죽을 때까지 중국 인민들을 위해 살다간 모택동을 기억하기 위한 동상이겠지만,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선 좀처럼 보기 힘든 거대한 규모에 좀 놀랐다. 중국 근대사에 일가견을 가진 K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중국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중국의 공산화를 위해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전 중국민의 영웅으로서 모택동의 존재는 특히 나이 지긋하신 노인들의 전쟁 무용담속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단골메뉴라할만큼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단다. 듣고보니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모택동의 존재의미가 약간 퇴색되었을 뿐 여전히 전국민의 영웅으로서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
|
어둠속에서 다시 발길을 재촉하니 아침 7시 10분쯤 흑룡담 공원 입구(정문)를 찾았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매표소엔 직원이 나오질 않는 것처럼 보여 정문을 유유히통과한 후, 공원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시계방향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새벽 여명속에서도 아름드리 나무들과 고풍스런 기와집 등으로 이어진 아름다룬 공원 모습이 호수 물가에 반사되어 비칠 때면 금방 어디선가 귀신들이 뛰어나와 춤추고 노래부르며 신명나게 춤판을 벌여볼 태세여서 잔뜩 긴장이 되기도 한다. 제법 쌀쌀한 새벽공기 때문에 손엔 장갑까지 끼고 있었지만 한기(寒氣)는 두꺼운 겉옷을 뚫고 피부까지 와 닿는 듯했다. 중국 운남성(雲南省)의 날씨를 일교차를 고려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낮엔 한 여름이고 아침. 저녁으론 늦가을 날씨, 그리고 밤엔 겨울 날씨여서 매년 환절기때마다 코감기로 고생하던 나를 계속 고생시킨다(콧물이 자주 흘러나올 정도의 쌀쌀한 날씨였음). 운남성(雲南省) 날씨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루동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가 공존한다고나 해야할까. 아무튼 배낭여행을 시작한 이후 낮시간엔 너무 무덥게 느껴져 두꺼운 겉옷을 벗어야만 했고, 지금과 같은 새벽녘이나 밤엔 추위에 떨어야 했었다.
|
|
이른 새벽 산책도중에 공원 뒷산(象山)에 올라 새벽운동을 하다면 질러대는 고함소리와 가끔씩 개를 데리고 어둠속을 산책하는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원을 2/3쯤 돌아 '득월루(得月樓)'에 도착한 후 잠시 춥고 피곤한 몸을 쉬어주면서 K선생님과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가 참가했었던 2001년 7월말 '동남아 3개국(태국/싱가폴/인도네시아) - 교직원해외연수(2차)' 때의 이야기 등을 나눴다. 듣고보니 K선생님의 중국사랑(?) 열병이 도진 계기도 2000년 여름에 있었던 '중국 - 교직원해외연수(1차)'를 이후 거의 매방학때마다 중국을 찾았던 일이 시작되면서부터란다. '왜 그토록 여행을 좋아할까?'를 생각해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레임과 기다림, 여행을 다니면서 직접 체험하는 신비감과 감동, 여행을 다녀온 뒤의 가슴속에 새겨온 아련한 추억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처없이 떠도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라고 외치는 어떤 TV광고 멘트를 실행에 옮겼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인간의 행복이란 돈(money)이 많고 적음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만의 편견일까...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아침 8시가 넘으면서 득월루 주변이 밝아온다. 가끔씩 불어오는 아침 바람도 차갑게 느껴진다. 저 멀리 보이는 옥룡설산(玉龍雪山) 만년설에도 눈부신 아침햇살이 부딪쳐 환하게 빛나고,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옥룡설산 모습은 거울처럼 맑은 공원 호수속에서도 이방인을 매료시킨다. 작년초에 찾았던 강원도 강릉 경포호수에 비친 달을 보며 황홀해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
|
기념사진을 찍다가 공원안 입구쪽에 위치한 "여행객 안내센터(tourist information)"를 찾아 언 손발을 녹이고 인정이 많아 보이는 중국아줌마가 건넨 따스한 녹차로 온 몸에 온기를 불어넣어본다. 아침부터 자신의 할 일(여행안내센터 운영) 준비에 바쁜 아줌마로부터 리지앙 기념엽서를 한나씩 산 후, 따스한 녹차를 대접받은 댓가로 한국엽서를 한 장 주었더니 정말 고마워한다. '나시고악(納西古樂)' 연주장소를 물어보니 시계방향으로 돌았던 길을 되돌아가서 건너편에 있는 건물쪽으로 가보란다. 그러나 시각은 이미 아침 9시를 넘어 계속 흘러가는 가운데 나시고악 연주 장소를 찾질 못해 한참을 헤맸다. 공원을 반시계 방항으로 다시 한 바퀴 돈 뒤에도 찾을 수 없어 공원입구쪽 기념품을 파는 가게 종업원에게 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시고악을 듣기위해 기다리는 관광객이 없어 연주가 시작되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소리가 들리지않았고, 좀전에 잘못 들어간 것으로 생각되던 공연장 입구가 맞았다. 갑자기 공연장에 이방인 두 사람이 들어서니 재빨리 악기 음을 서로 맞추더니 곧 연주를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무료공연을 들을 수 있도록 길다란 의자들이 앞뒤로 줄지어 놓여 있고, 음악을 들어주는 관객은 딱 우리 두 사람뿐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가냘프고 슬픈 느낌이 뚝뚝 묻어나는 첫 곡 연주가 끝나자 노래까지 곁들인 두 번째 곡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세 번째 곡까지 20여분간 듣다보니 무료연주여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저녁때 만난 미스터 빈과 K교수님은 그날 오후에 3시간이 넘게 나시고악을 듣고 오셨단다. 두 사람의 말을 빌리면 나시고악 연주는 약 50분 정도 연주를 한 다음 10분쯤 쉰단다. 나시고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월급을 국가로부터 받는 공무원들이며, 관광객이 자리를 뜨지 않는 한 무료 연주는 계속되다가 관광객이 모두 떠나면 비로소 연주를 멈춘단다. 한 장소에서 3시간이 넘게 머물면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여행객이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쫓기듯 시간에 얽매여, 아직까지 아침식사를 못한 까닭에 좀 허기진 배꼽시계를 탓하며 무료공연이 너무 미안해 중국돈 10위엔을 헌금함에 넣고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왔었다. 지금생각해보면 미스터 빈이나 K교수님이야 말로 중국 차(茶)와 중국 음악(音樂)과 중국 산수(山水) 등에 매료된 진정한(?) 배낭여행족으로 기억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시각은 이미 10시를 훌쩍 넘긴터라 흑룡담 공원 입구에 있는 길거리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쌀국수(2인분: 6위엔)와 만터우(2개: 1위엔)를 시켜 준비해간 고추장까지 풀어 먹어보지만 맛이 별로 없다. 급한대로 허기를 때우고 내일모레(1월 9일.목~1월 10일.금) 1박 2일간의 호도협(虎渡峽) 트레킹 출발을 위한 따주(大具)행 버스표 예매와 글피(1월 11일.토) 찾아가 볼 옥룡설산(玉龍雪山), 운삼평(백수하)로 가는 차편을 물어보니 '홍태양광장(紅太陽 廣場)'에 있는 간이버스 터미널로 가라고 적어준다. 몇 번에 걸친 배낭여행 경험으로 내일새벽과 3일 후의 버스표까지 미리 알아보시는 K선생님의 준비성에 찬사를 보냈다.
어두웠던 새벽길과는 달리 중천에 떠있는 태양아래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바쁘게 오고가는 중국인들 사이를 잰걸음으로 걷다보니 얼마지나지 않아 홍태양광장이다. 간이버스 터미널은 홍태양광장 모택동 동상 건너편(동상에서 바라볼 때 우측편)에 있었고, 먼저 내일새벽 출발 따주(大具)행 버스표 2장을 예매했다(여행 팁: 리지앙-따주(大具), 中巴, 23.5위엔/인, 약 3시간 소요예정). 옥룡설산(玉龍雪山), 운삼평(백수하)로 가는 버스는 모택동 동상 우측에 있는 홍태양 호텔(紅太陽 賓館, Red Sun Hotel) 옆 도로변에 정차중인 미니버스(中巴) 운전기사와 안내양에게 물으니 7번 버스로 첫차는 아침 7시 50분 출발, 옥룡설산까지는 약 40분(차비: 8위엔/인), 옥룡설산에서 운삼평(백수하)까지는 약 15분 소요된단다. 버스 시간과 차편을 확인했으니 필요한 정보는 모두 챙긴 셈이고, 이젠 1일 1인당 숙박비가 5위엔 더 싼 위에라이커짠(悅來客棧, 15위엔/인)으로 숙소를 옮기기만 하면 된다. 막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흑룡담 공원을 찾아가는 미스터 빈과 K교수님 일행과 마주쳐 흑룡담 공원과 내일새벽 호도협 트레킹을 출발을 위한 따주행 버스표 예매 정보를 주었더니 트레킹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신다. 저녁때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헤어져 12시쯤 사방객잔에서 열래객잔으로 짐을 옮겨 놓고, 쓰팡지에를 출발하여 리지앙 고성 구경을 시작한다.
|
|
고성입구 물레방아로부터 시작된 작은 개울들이 고성 이곳 저곳을 돌고 돌아 흐르고 오래된 기와와 전통 중국양식의 목조건물이 매끄럽기까지 했던 돌로 다듬어진 길들로 이어진 골목들을 고성 지도 하나 달랑들고 미로찾기 하듯 헤매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고성 골목끼리 만나는 중요지점에 이정표를 세워두었지만 고성 지도와 잘 맞질 않았고, 한껏 욕심을 부려 고성 바깥쪽부터 샅샅히 볼려고 하다보니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쓰팡지에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직선거리로 걸어가도 30분이 넘을 것처럼 보임)까지 걷게 되었다. 중간에 들렀던 초등학교 운동장 게시판앞에서 살펴본 중국 학교의 모습은 뜻모를 붉은색 글씨가 적힌 간판이 교정 곳곳에 내걸려 있었고, 순박해보이는 초등학생에게 건넨 초코렛과 사탕은 인기만점이었다. 초코렛과 사탕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韓國)에서 온 한국인(韓國人)'이라고 일행을 소개하니 아는체 한다.
|
|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고성 외곽을 도는 큰 도로를 따라 상당히 먼 거리를 걸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충의시장(忠義市場)'을 지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고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작은 산?)위에 만고대 누각과 목부(木府) 건물 일부가 보인다. 나보다 더 피곤해하시는 K선생님과 잠시 시장 모퉁이에서 쉬면서 사탕과 물로 허기를 잠시 속여본다.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눈앞에 보이는 목부 건물 입구를 찾아 둘어보아도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숙소로 되돌아왔다(오후 2시 50분). 점심은 간단히 중국 컵라면(홍소우육면 紅燒牛肉面)에서 스프를 빼고 한국에서 준비해간 스프와 고추장을 풀어 먹는다.
|
|
약 30분쯤 쉬다가 쓰팡지에로부터 가까운, 리지앙 고성이 내려다보이는 만고대를 찾아 오르막길을 오른다. 가만히보니 힘들고 오르고 있는 이길은 어젯밤 사쿠라카페를 찾기위해 헤매던 도중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넘었던 고갯길이었다. 약 10분쯤 오르다 왼쪽으로 꺽인 만고대 입구에 도달하니 표를 끊으란다(15위엔/인). 새벽부터 공짜(?)입장을 감행했던 우리가 정식으로 입장표를 사서 만고대를 구경한다? 아니지.... 배낭여행 정보에 의하면 오르막길 정상에 있는 낮은 산 숲속을 돌아 만고대 후문쪽으로 접근하면 무료입장도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실행에 옮겨본다. 산 정상 소나무 숲길 사이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드디어 후문 입구(오후 4시경).
찾는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인지 후문을 지키는 아가씨가 보이질 안아 당당히 무료입장 성공. 5층 목탑인 만고대 누각안쪽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서 고성을 바라보니 우리나라 전라북도 전주시에 볼 수 있었던 전통가옥 보존지구를 망불케하는 엄청남 규모의 고성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방향을 돌려 신시가지쪽을 바라보니 높은 솟은 중국은행 건물과 어깨를 나란히 맞댄 고층 건물들이 리지앙 고성쪽과는 상반된 느낌으로 다가오고, 저멀리 눈덮인 옥룡설산이 우뚝 서있다.
입장권도 끊지 않고 리지앙 고성을 내려볼 수 있는 만고대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더 멋져보인다(???). 만고대 우측 밑에까지 목부건물이 이어져있는 것처럼 보여 이왕이면 목부까지 무료입장을 시도해보지만, 철조망이 쳐진 숲속엔 길이 없고 목부쪽 담벼락이 유난히 높아 보여 일단은 포기한다.
|
|
다시 쓰팡지에로 되돌아와 목부 입구까지 가는 길을 물어 목부를 찾아가니 너무 반갑다. 입장권(표) 값을 살펴보니 1인당 35위엔씩... 특히 배낭여행객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보니 너무 비싸다.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뒷길(개구멍?)은 없어보여 표를 끊더라도 50% 할인해주는 학생표를 사기위해 내가 먼저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을 내밀어본다. 중국어로 '쉬에셩(學生)'이라고 말하니 내 모습과 주민등록증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자기네끼리 뭐라고 막 떠든다.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힌 주민등록증은 소수민족이 많은 이곳 운남성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학생증으로 우기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학생표를 표를 끊을려는 순간, 좀 멀리서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K선생님이 달려와 '학생표 2장'을 외치니까 의심을 하면서 학생표를 줄 수 없단다(오후 5시경). 35위엔이라는 입장료치곤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던 우리 일행은 목부 관광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사쿠라카페로 향한다.
|
|
'세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멕시코 치첸이사 (마야 문명) (0) | 2007.01.27 |
---|---|
티벳(하늘 호수 가는 길) (0) | 2007.01.27 |
[중국 계림]]계림/이강유람(관암-양재코스)/팔각체/요산 사진 및 안내지도 (0) | 2007.01.26 |
계림사진1 (0) | 2007.01.26 |
계림사진 (0) | 2007.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