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

티벳(하늘 호수 가는 길)

울산 금수강산 2007. 1. 27. 20:00
티벳 사람들은 베이징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만 티벳의 태양은 티벳의 시간을 따라 뜨고 진다. 벌건 대낮을 밤 시간이라 부른다 해서 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인간의 규칙이 있듯이 자연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남쵸(Namtso)는 하늘 호수다. 티벳어의 남은 하늘이고 쵸는 호수다. 남쵸 가는 길목에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순례자를 만난다. 인간의 욕망 중 유일하게 아름다운 욕망은 거룩해지고자 하는 욕망이다. 저 순례자는 단지 내세의 구복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룩한 영적 갈망이 그의 육신을 벌레처럼 몸 낮추어 기어가게 만들었다.

‘하늘 호수’ 남쵸의 일몰

“비록 천국이 우리 행복의 완성이요, 완전함을 나타낸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에 의해서이다. 그렇게 성인들은 가르쳤다.” (로버트 앨스버그)

천국이나, 극락, 도솔천, 파라다이스, 어떠한 유토피아도 ‘지상에는 없는 곳’들이다. 지독하게 운이 좋거나 선행을 쌓은 뒤 죽어야만 갈수 있는 곳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신은 죄를 짓기 전의 어린 아이들을 ‘강제 해탈’의 방법으로 천국에 데려가지 않는가. 죄와 사악함의 한 가운데 던져주고, 악의 세계에서 선을 쌓은 뒤에야 천국에 이르게 하는가. 그렇다! 티벳 땅에 와서야 비로소 알겠다. 천국이란 죽음에 의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거룩함에 의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거룩하게 사는 삶이 바로 천국이고 불국토가 아닌가. 죽음이 아니라 거룩한 삶 속에 천국이, 불국토가 있다.

라싸만이 아니다. 외곽의 어느 곳도 새 집을 짓지 않는 마을은 없다. 들판은 푸르고 만년설의 설산지대가 시작된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따갑던 눈도 시원해진다. 대체로 사람에게 해로운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다.

‘하늘 호수’ 남쵸

미니버스는 남쵸 호수 입구 매표소에서 멈춘다. 일인당 입장료가 80위안, 가는 곳 마다 돈이다. 티벳이란 나라도 이제는 더 이상 여행자들이 천국은 아니다. 다시 숨이 막혀 온다. 어느 곳을 가나 소매를 붙드는 것은 반이 걸인이고 나머지는 상인이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손을 벌린다. 아이도 손을 벌리고 라마승도 손을 벌린다. 호수가 가까워진다. 야크와 양떼를 기르는 유목민의 텐트가 자주 눈에 띈다. 오토바이를 타고서 야크 떼를 모는 목동이 초원을 달린다. 유목민 텐트 앞에 앉은 아이가 손을 흔든다. 삶이란 저토록 애틋하다.

남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잠시 멈춘다. 룽다를 거는 곳이다. 돌탑 위에 야크 해골이 올려져 있어 남쵸 호수와 함께 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일어서려는 순간, 소년 하나가 팔목을 확 잡아챈다. 사진을 찍었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소년의 눈앞에서 미련 없이 사진을 지운다. 그래도 소년은 내 옷자락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다. 1위안을 건넨다. 소년은 돈을 던져 버린다. 무조건 5위안을 달란다. 유목민 집단일까. 말을 태워 주고 돈을 받던 건장한 티벳 청년 하나가 긴 칼을 차고 다가와 소년에게 돈을 주라고 강권한다.

둘러보니 여행자들은 다 그 꼴을 당하고 있다. 여행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화를 돋구는 아이. 이건 구걸이 아니다. 강도다. 티벳 사람이라고 해서 티벳의 하늘과 호수를 볼 수 있는 권리까지 소유했다고 주장 할 수는 없다. 이들을 걸인으로, 돈의 노예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중국일까, 여행자일까. 착잡하다. 더 이상 호수의 꿈같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디 티벳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웠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1000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장악했으며 인도와 중국 간의 교역을 중개하고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여행자가 티벳 사람들을 돈에 물들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여행자가 야크 가죽이나 양고기처럼 돈이 된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남쵸 호수 가는 길에 만난 소녀


해발고도 4718m, 고원에 위치한 남쵸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다. 라싸에서 북쪽으로 195㎞ 떨어져 있으며 길이가 70㎞, 너비가 30㎞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호수 남쪽은 7111m의 녠첸 탕글라 산맥(念靑唐古拉山脈)이, 북쪽은 5072m의 탕구라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 높은 고원의 호수가 염호인 것은 이곳이 한때 바다였기 때문이다. 1억 년 전 인도는 아시아 대륙과 분리되어 있었다. 두 대륙 사이는 깊은 바다였다. 7000만 년 전 쯤부터 인도대륙이 이동을 시작해서 아시아 대륙과 부딪쳐 아시아 대륙을 밀어내기 시작 했다. 이 지각 변동으로 2500만년~1000만년 사이에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올랐다. 깊은 바다 속이 산 정상이 되었고 함께 솟아오른 티벳은 고원이 되었다. 히말라야의 조산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네팔 땅은 해마다 수㎜씩 상승하고 있다.

남쵸의 물빛은 청옥 같다. 청보석의 호수. 라싸에서 1000m를 더 높이 올라 왔다. 많은 이들이 고산병으로 힘겨워 한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따갑고 구토를 한다. 우리와 함께 온 친구 하나는 구토에 시달리더니 도착하자마자 돌아갔다. 숙박은 기사가 안내 해준 유목민 텐트에 잡았다. 하룻밤 보낼 일이 걱정이다. 이곳도 라싸의 바코르 광장만큼이나 여행자로 북적인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기념품과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티벳인들의 끈질긴 호객 행위는 여전하다. 외국인들만 보면 무작정 손부터 벌리는 것도 같다. 이것은 가난의 문제가 아니다. 욕망의 문제다. 숨이 많이 차다. 한숨 붙이고 나니 조금 가벼워진다. 그 사이 여행자들도 많이 빠졌다. 대부분의 버스 여행객들은 당일치기로 다녀간다. 남는 여행자는 적다.

호수 건너편 산들은 제주도의 오름과 비슷한 느낌의 민둥산이다. 호수 가에 조용히 앉아 있으려 했으나 티벳인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시마’, ‘시마’ 말을 타라고 질기게도 불러댄다. 말은 뙤약볕이 힘겨운지 꾸벅꾸벅 졸고 서 있다. 안타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한 사람이 가니 또 한 사람이 온다. 이번에는 ‘야크 본’, ‘야크 본’ 외치며 야크 뼈로 만든 목걸이를 사라고 한다. 어딜 가도 사람 사는 곳에서 안식을 얻기는 어렵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숨 막혀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문득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출을 보러 가는 여행자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직 내가 살아 있구나. 여행자는 길에서도 잠들지 못한다. 호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여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숙소 주인 여자는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목을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주인 남자는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다. 여자가 야크 티와 짬파를 가져다 바친 뒤에야 부스스 눈 뜬다. 주인남자와 운전기사는 짬파를 먹고, 우리는 야크 버터차를 마신다. 여자는 함께 먹지 않는다. 이 땅의 남자들도 지독히 가부장적이다. 힘든 일은 여자들 몫이다.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 빈둥거리거나 술 마시고 여자와 아이들을 패는 일이 거의 전부다.

남쵸의 밤은 추웠고 만년설의 산 아래 호숫가 아침 공기는 차다. 주인집 텐트 안 난로에서는 마른 야크 똥이 탄다. 난방과 취사 겸용이다. 야크가 아니었으면 이 고원에서 사람이 어찌 살았겠는가. 살을 베어 먹이고, 뼈로 장신구를 만들어 돈을 주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고, 똥으로 따뜻한 밤을 준다. 야크 똥은 갈탄보다 화력이 세다. 붉은 색이야말로 생명의 색이다. 저 난로의 불빛이 그렇고 피가 그렇다. 숨이 차지만 않다면 남쵸는 며칠이고 머물고 싶은 곳이다. 자동차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숨쉬기가 편안해 진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