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 2008. 9.21 (일요일)
2.어디서:미시령~상봉~신선봉~화암재~세이령~마산봉~진부령
3. 날씨 : 맑음
4. 왜: 종주
5. 누구랑 :새천년산악회
| ||||||||||||||||||||||||||||
| ||||||||||||||||||||||||||||
신선봉에서
이번에도 변함없이 이곳에서 새벽참을 ~~
씨락국이 시원하고 맛도 좋았다
대간사람들 아니면 이 밥을 먹을수 있을까
엑스포상징탑 (타워가 정겹구만)
예전에 관광엑스포를 개최했던 곳으로... 지금은 공원으로 활용된다. 공원내부를 즐기며 둘러볼수 있는 재밋거리를 선사해 준다.
옆쪽에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청초호를 끼고 있으며 공원내에는 속초시 전경을 관람할수 있는 엑스포 상징탑이 있다..
공원내부 곳곳에서는 연인들이 즐겨타는 자전거, 아동부터 장년층까지 즐겨타는 바이크와 마차.. 골프차? 인라인 등등..
그리고 엑스포상징탑 관람료는 1500원
출발 03:45분
미시령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하기를 예전에 길이 있었으나 페지하여 다니지 않다가 성종24년에 다시 길을 열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 당시 기록에는 미시파령(彌矢坡領)으로 쓰고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문헌상 기록되어 있는 미시파령은 조선후기부터 “미시령”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미시령이란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6.25때 폐쇄하였던 도로를 1989년 재개통 하여
사용하다가 현재는 미시령 아래 4차선 터널이 개통되어 또 다시 역사속으로 묻혀가는 고개가 되고 있다.
조그마한 불빛~~~
모두 숨을죽이고 도독 산행길~~
대간이 뭐길래~~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속촉시내 야경인데 흔들려서~~~ㅋㅋㅋ
참말로 등산로 한번 멋지다 이 나무를 넘어야 하나~
먼동이 트면서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민주님이 오늘 가이드를 하여 알바는 없었고 산대장 역활을 120% 달성하셨다
신선봉에서~~
정상석은 어디에 ?
신선봉에 대간님들이~
고성에서 진부령 올라오는길~
신선봉 주변 바위
가을 재촉하나~ 벌써 단풍이
흘리령(지금의 새이령이다)
흘리령(이 곳 주민들은 “흘령”으로 부른다)은 안흘리에서 중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름이며 흘(屹)은 쭈삣할 (屹)로서 고원에 있는 마을을 뜻 한다.
고구려 언어인 고어에서 山은 達을 뜻하고 홀(忽)은 촌락, 시, 주, 군의 집단 또는 성읍의 뜻으로 달흘(達忽)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고구려 때 고성군의 지명이 “달홀(達忽)”이었던 것으로 보아 흘(屹)은 높은 산위의 고원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흘리령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백두대간 마루금이 우회하고 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간다.
새이령
신동국여지승람에서는 “小破嶺”이라 하였고(미륵천의 상류로 “小波嶺”의 물길이란 문헌은
새이령의 물줄기를 이른 말이다) 택당 이식의 “수성지”에서는 “石坡嶺”이라 하였고 광여도 등에도“石坡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소파령”또는 “석파령”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제시대에 대간령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현지 주민들은 샛령으로 부르고 고시되어 있는 지명은 “새이령”이다.
샛령.새이령.대간령 들으로 불리는 이 고개는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으로
사이(間)자를 넣은 지명을 사용하였고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의 고개가 포장되기 전 까지는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간성사람들이 소금은 가져와 인제 사람들의 감자와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며 이곳에 남아 있는 집터의 흔적은 그 당시 상황을 잘 설명 해 주고 있다.
투구꽃
치마바위
세월의 허망함 보여준다~
금강초롱
금강초롱
금강초롱
맨뒤에 높은곳이 향로봉
마산봉
마산봉은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중 남한에 속한 제 2봉이다...
금수강산
천관님
산지킴님
공룡님
칵태일님
하늘빛 민주님
곤드라 시작되는데서 우측으로~
밑으로 엎드려~~
나비
이 낙옆송 중간으로 가야 대간길~
콘도 뒤에 이 경고판은 잘못된것임 통제구역은 세이령부터~~
군부대 숙소정문을 지나서
이 초소에서 우측으로 올라가야됨
비닐하우스 우측으로 계속올라감
진부령
백두대간이 가로 막는 영서(간성과 인제)을 이어주는 오솔길이었던 진부령은 1632년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 이식이
인근의 승려들을 동원 해 좁은 길을 넓혔다 한다
1930년 일제시대에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1987년 2차선 포장도로가 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진부령은 또다른 이름으로 "조쟁이"라 부른다.
영서의 곡식과 영동의 해산물이 고개(진부령)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장이 서게 되고....
그러한 장터를 이 곳 사람들은 "조쟁이"라 불렀나 한다.
장터를 뜻하는 조쟁이를 "陳富嶺"으로 이두문자화 한 것으로 보인다.
진부령은 6,25전쟁 전 까지 북쪽의 땅이었다.
민족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 향로봉 전투 전적비와 진부령의 전적비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진부령 대간석에서~
완주한 대간님들 >>>
모두모두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지리산 까지 완주를~~
어느 관광버스 기사님 뭐 하시는지 혹시 짜장면 시키는지???
'영동권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한계령~끝청~대청봉~중청~소청~회문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2>) (0) | 2008.10.04 |
---|---|
설악산 (한계령~끝청~대청봉~중청~소청~회문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1>) (0) | 2008.10.04 |
피재~매봉산~비단봉~금대봉~은대봉~중함백~함백산~수리봉~화방재 (0) | 2008.08.24 |
미시령~1318봉~황철봉~저항령~마등령 (0) | 2008.08.17 |
댓재-큰재-황장산-환성봉-덕항산-구부시령-풋대봉-건의령-구봉산-피재 (0) | 2008.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