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 2008. 8.17(일요일)
2.어디서:미시령~1318봉~황철봉~저항령~마등령~오세암~영시암~백담사~용대리
3. 날씨 : 조금흐림및 안개
4. 왜: 종주
5. 누구랑 : 새천년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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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하기를 예전에 길이 있었으나 페지하여 다니지 않다가 성종24년에 다시 길을 열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 당시 기록에는 미시파령(彌矢坡領)으로 쓰고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문헌상 기록되어 있는 미시파령은 조선후기부터 “미시령”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황철봉에서 저항령 내려가는 중입니다. 바위를 딛고 내려가는 위험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는 길이 었습니다 .
황철봉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 있는 봉으로 저항령과 더불어 너덜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의 지대는 넓이를 알 수 없을만큼 커다란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으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저향령
다른 이름으로 “늘목령”이라 하는데 이것은 길게 늘어진 고개란 뜻에서 온 늘으목.늘목에서 유래하였고,
저항령은 “늘목”이 노루목“으로 변하고 노루목을 한자화 하여 ”장항“으로 고개를 뜻하는 ”령“을 붙여 ”장항령“이라 하던 것이 발음상”저항령“으로 변하여
노루목에 온 ”장항“과 관계없이 "저항령”으로 표기 된 것으로 보인다 .
마등령
오세암에서 설악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 다음으로 큰 봉우리(1327)로 산세가 가파라서 이 고개를 넘을 때 능선을 어루만지며 넘는다고 하여
“마등령”이라 하였다.
영시암의 유래
조선 죽종15년의 일이니 이해는 나라에 큰 혼란이 빚어지니 유명현 장희빈 사건이다.
숙종의 정비(正妃) 인현왕 후 민씨께서는 왕자가 없고 숙빈장씨가
숙종 14년 9월에 왕자를 낳았다.
숙종이 장씨에게 혹해지니 서인들이 간청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았다.
숙종 15년에 장희빈의 소생을 세자로 책 봉하려 하자 영의정 김수흥과 같은 분은
『세자를 가르치는 문제가 급하지 세자책봉이 급하지 않다 』고 김수항,
송시열을 귀향 보냈다가 그해 3월에 김수흥의 관직을 박탈하고 윤 3월에 사약으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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