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완)

한남금북(4차) 수레너미재~것대봉~상당산~이티재~구녀산~방고개~좌구산~작굴산~질마재

울산 금수강산 2013. 4. 9. 23:32

 

1. 언제 : 2013. 4.7 (일요일)

2.어디서:수레너미재(현암삼거리)~것대봉~상당재~상당산성~상당산~이티재~구녀성~구녀산~방고개~

           좌구산~작굴산~질마재

3.날씨:맑음

4. 왜:종주

5. 누구랑 :금수강산,산딸기,계룡산,칵태일,

 

 

 

 

 

○ 조선 영조 태실 : 청주시 남성면 무성리에 위치

1695년(숙종 21)에 조성되었던 영조(1694∼1776)의 태실을 1729년(영조 5)에 다시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도록 고쳐 만든 것이다.  비신의 앞면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웅정7년 10월 14일(雍正七年十月四日建)〉이라 쓰여 있다. 1928년에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그 후 태실 자리에는 민간의 묘가 들어섰고, 태실 비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다. 1982년 청원군에서 태실을 복원하였다.

○ 목련공원묘지 :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산2-1번지에 위치, 1992년 청주시에서 “월오공원”을 조성한 후 “목련공원묘지”로 명칭변경, 연면적 410,130㎡, 분묘 7,390기, 납골묘(목련원)470기, 납골당(목련당)5,320기, 총 13,450기를 수용토록 조성되어 있다. 관리사업소 1동, 주차장(400대), 식당 및 매점(125평)등이 있고, 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봉화산(것대산480.0m)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청원군 남성면에 걸쳐있는 산,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기록되어있다. “居次大”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 것대산 봉수지 : 것대산에 위치한 봉수지로 청주시가지가 훤히 보인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봉수지로서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횃불을 올리는 통신시설이었다. 평상시 1홰, 적군 출현 2홰, 국경에 접근 3홰, 국경 침범 4홰, 전투 5홰를 올렸는데 전국의 5개 봉수노선 가운데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노선으로, 소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진천 소을산 봉수로 전달하였다. 1894년에 봉수제도가 폐지되어 방치되었다가 2009년에 복원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는 거차대(居次大)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기록되어있다.

○ 상봉재 : 청원군 남성면 현암리와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을 잇는 고개, 재에는 친구를 위한 碑가 있는데 그 내용은 뇌출혈로 뇌사판정을 받은 박 주만 청년이 12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고 적혀있고 비석 뒤에는 12명의 친구들이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웠노라고 적혀있다.

○ 산성고개 출렁다리(下512지방도) : 청주시 상상구 명암로 산 3번지 외1필지, 길이 43m 폭 1.5m, 높이8m, 청주시내로 접어든다.

청주는 백제시대에는 上黨縣,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으로 西原小京이 설치되었고 경덕왕 때 西原京으로, 고려 태조 23년에 淸州로 고쳤다. “高麗史”지리지에는 “淸州牧”으로, 1946년에 청주부와 청원군이 분리되었고 1949년에 청주시로 승격되었다.

○ 상당산성 : 상당산 계곡을 둘러쌓아 만든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 4.2km 면적 54,000평이다. 백제 때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초기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상당이란 이름은 청주가 백제시대 에는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숙종 42년(1716)에 석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한다.

○ 상당산(上黨山, 491.5m) :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 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쪽과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무심천(無心川) 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가고 동쪽의 물은 미원천을 거쳐 남한강에 합수한다.

○ 이티재(360m) : 청원군 북일면 초정리와 미원면 대신리를 이어주는 고개.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을 때 이틀에 걸쳐서 넘는다고 ‘이틀재’라고 불렀던 것이 ‘이티’로 변음 되었다고 한다. 주유소 마당에 “구녀성”이라는 커다란 돌비석이 있다.  

초정약수 : 이티재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원군 북일면 초정리에 있는 “초정약수”는 세계 광천학회에서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鑛泉水)로 꼽고 있다. 조선 세종대왕과 세조가 이곳에서 질병을 치료하였다고 전해지고. 동국여지승람 청주목 산천에서는 ‘淸州에서 쪽으로 39에 매운맛이 나는 물(椒水)이 있는데, 이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하였고, 이수광의 지봉유설(芝蜂類設)에는 ‘우리나라에 많은 초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경기도 광주와 청주의 초수가 가장 유명하다’고 기록돼 있다. 한여름에 초수의 약효가 제일 좋다고 해 복날과 백중날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목욕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 구녀성 : 축성 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됨. 【구녀성의 유래 표지판】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 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싣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릅 튼 다리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 된 동생은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 옆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 구녀산(484m) : 남한강의 발원지인 좌구산(座龜山, 675m)에서 남서쪽으로 북일면 우산리 및 미원면 대신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구녀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민간신앙의 집산지로 출생과 무병을 기원하는 서낭지가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으며, 오랜 기간 신성시 되던 곳으로 노송과 원시림이 천연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산의 명칭이 구라산· 궁예산· 구려산 등으로 전해져 오던 중 이곳의 축성설화와 관련해 “구녀산”이라 불리고 있다.

○ 분젓치 : 옛날 장꾼들이 증평장과 미원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 지금은 증평읍 율리와 미원면 종암리를 연결하는 2차선 도로가 나있다.

○좌구산 천문대 : 방고개 입구 즉 증평읍 율리 산 61-1번지, 부지면적 4천290㎡, 사업비 50억원, 건축 연면적 820㎡, 높이 17.7m, 별자리관측 등 주․보조 관측실, 홀, 시청각실, 전시실, 투영실, 사무실 등, 2010년 말 완공.

○방고개(栗峙360m) : 증평읍 율리 부점촌과 청원군 미원면 화원리 삼흥을 잇는 고개로 지금은 비포장 임도가 잘 닦여 있어서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다. 원래는 율치라고 부르는 “밤고개”였다. 증평군의 지명에 대한 사료에 따르면 이곳 “밤고개” 밑에는 “밤티”라는 마을이 있었고 인조반정 때의 공신인 김치의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이룬 마을이라고 한다.

○좌구산(座龜山657.8m) : 증평군에서 최고봉이다. 산의 모형이 마치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거북 구(龜)자를 써서 좌구산(坐龜山)이라고도 하고, 또한 개 구(狗)자를 써서 좌구산(座狗山)이라고도 한다. 조선 광해군 때 정3품 병조참지를 지냈던 진주목사 김시민의 양아들인 김치(金緻)는 점술과 천문에 능했는데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질 즈음 자신의 관상을 보니 이듬해에 죽을 운명인지라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 좌구산 밑의 율리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이때에 김치는 한양의 심기원, 최명길 등과 내통하여 인조반정을 밀의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김치에게 심기원이 찾아와 능양군의 사주와 반정을 일으킬 일자를 점쳐 달라고 하였다. 이에 김치는 반정일자를 정하여 주고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졌는데 “좌구산”에서 개가 세 번이나 크게 짖어대므로 잠에서 깨어 그곳을 즉시 피하여 무사했다고 한다. 그 후 김치는 개가 짖음으로 사람을 구하고 나라의 큰일을 성공할 수 있게 하여 준 명산이니 개 구자를 써서 “좌구산(座狗山)”이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전해온다.

○ 새작골산(612m) : 3개 군(충북 괴산군, 증평군, 청원군)이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

○ 질마재(청안고개) : 괴산군 청안면과 청천면을 연결하는 592번 지방도, 증평읍에서 속리산으로 이어진다. 질마(말이나 소가 수레를 끌 때 등에 얻는 안장)와 같은 형국이라 질마재로 불렀다고 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