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8만여 명의 주민과 8천여 명의 승려가 살았던 가오창(高昌) 고성 유적. |
중국인들은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육지를 ‘우루무치(烏魯木齊)’라고 말한다. 그 주장이 사실인지 억지인지 모르지만 그 주장에 근거해 중국인들은 우루무치를 ‘아심(亞心 :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바다에서 무진장 멀리 떨어진 땅 우루무치. 우루무치로 가는 길은 대륙의 속살을 확인하는 길이다.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4시간. 대륙의 황무지를 거쳐서 도착한 우루무치는, 역설적이게도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이란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조성된 이 도시를 옛 사람들은 그렇게도 아름답게 여겼나 보다. 그러나 지금 우루무치에서 목장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20~30층 높이로 쭉쭉 뻗은 고층빌딩이 적지 않게 도심을 채우고 있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중국인이 ‘아시아의 중심’이라 부르는 곳
우루무치는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구도(區都)다. 신장의 전체 면적은 164만 평방킬로미터로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한반도의 7배가 넘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이 사막과 황무지여서 인구는 1천700만 명에 불과하다. 위구르민족의 자치구라고 하지만, 우루무치는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한족(漢族)이다. 위구르족은 카스(喀什)·투루판(吐魯番) 등 신장자치구의 다른 도시에 밀집해 살고 있다.
사실 우루무치는 관광의 명소가 별로 없다. 자치구의 구도인 만큼 신장 지역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다. 또 신장 여행의 출발지이자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투루판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이면 닿기 때문에 우루무치-투루판은 한 묶음 관광지다.
투루판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뭔가가 있다. 투루판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 산맥 사이의 오아시스에 형성된 작은 도시인데, 중국인들은 투루판을 ‘화주(火州 : 불의 마을)’라고 부른다.
투루판 일대를 다니다 보면,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부르는지 수긍이 간다.
투루판의 화염산. |
투루판의 땅은 불타는 듯 벌겋다. 미국의 화성 탐사선 스피릿과 오퍼튜너티가 지구로 전송해온 화성 표면의 사진 속 모습을 투루판에서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화염산(火焰山)이 있을까. 하나의 골과 능선은 마치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 모습이고, 그런 불길이 수십~수백 개가 모여 거대한 화염을 이루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황사암 산은 햇빛을 받아 불처럼 타오르는 모습이다. 화염산은 또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이 산의 불을 끄고 삼장법사와 함께 넘어갔다는 서유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투루판이 ‘화주’인 것은 땅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연간 최고 기온이 섭씨 49.6도까지 오를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지표의 온도가 섭씨 80도까지 오른다. 연간 강수량은 불과 16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증발량은 3천밀리미터에 달한다. 물 없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불모의 땅에 어떻게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을까?
‘칸얼징(坎兒井)’에 답이 있다. 칸얼징은 인공적으로 뚫은 지하수로를 일컫는다. 투루판 분지를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천산 산맥의 산정(山頂)은 만년설이 덮여 있다. 2천여 년 전부터 사람들은 이 만년설이 녹은 물을 투루판으로 끌고 오기 위해 지하수로를 뚫었다. 산 바로 밑에서부터 투루판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물을 파고, 그 우물과 우물 사이를 지하에서 연결해 수로를 만들었다. 지표면에 물길을 만들면 가공스러운 증발력으로 인해 투루판에 도달하기 전에 물이 다 증발돼 없어지기 때문이다.
‘칸얼징’지하수로. 1천200여 개 총 길이 5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
그렇게 판 지하수로는 1천200여 개에 달하고 총 길이는 5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서울~부산 거리의 10배가 넘는, 물이 흐르는 ‘지하도로’를 뚫었던 것이다. 극한의 자연에 맞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 투루판인들의 전리품이 바로 칸얼징인 것이다. 칸얼징에 가면 인간이 얼마나 끈질기고 위대한지, 생명은 얼마나 존귀한지 자각하게 된다.
자연에 맞서 그처럼 강인했던 투루판 사람들이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그들은 큰 눈에 겁 많고 순박한 촌부의 모습이다. 17만 명 남짓한 인구 중 위구르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그들은 동양인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외모들이다. 관광 명소 입구마다 이슬람식 목걸이며 장신구를 파는 위구르족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포도알처럼 둥글고 큼직한 그들의 눈망울이 가진 호소력에, 그냥 외면하고 지나치기는 쉽지 않다.
투루판은 포도원으로 유명하다. 비가 적고 일조량이 많아서 질 좋은 포도가 자라기에 제격인 지방이다. 투루판 도로변의 집집마다 지은, 구멍이 숭숭 뚫린 벽돌벽 창고를 볼 수 있는데, 모두 포도를 말리는 창고들이라고 한다. 위구르족 사람들의 눈망울은 투루판 특산물인 알 굵은 포도를 닮았다.
포도알 같은 눈망울을 가진 위구르족 아이들을 만난 곳은 투루판 남동쪽의 가오창(高昌) 고성 유적터에서다. 한나라 출신 취원타이(麴文泰)가 세운 고창국의 성으로, 한때는 8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8천여 명의 승려가 살았던 곳이다. 그러나 고창 국왕이 흉노와 손을 잡자 당 태종이 군대를 파견해 둘레 5.4킬로미터 안의 이 황토성을 무자비하게 초토화시켰다. 지금은 1천500여 년 전 번성했던 흔적만 무너진 흙담 속에 품고 있을 뿐이다.
역사가 남긴 흔적에는 영화(榮華)도 있지만 가오창 고성처럼 허망하고, 안타까운 사연들도 적지 않다. 투루판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5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천불동도 안타까우면서도 괜스레 울분이 치솟는 곳이다. 화염산 북쪽 기슭 강 절벽에 만들어진 석굴 사원인데, 6세기경인 남북조시대부터 석굴 안에 불상과 벽화를 새기기 시작해 14세기까지 이어졌다.
포도원으로 유명한 ‘투루판’
그러나 지금 석굴 안은 독일인 탐험가가 벽화가 그려진 벽 전체를 잘라내 뜯어간, 도굴과 약탈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둔황(敦煌) 막고굴보다 더 철저하게 유린당한 곳이 투루판 천불동이다. 역사에서 수많은 침탈을 경험한 우리에게 천불동의 약탈과 유린의 흔적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루무치와 투루판 여행에서는 극한의 자연에 맞선 인간의 투쟁, 영락이 뒤엉킨 역사와 민족의 비애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이곳도 요즘은 개발 바람이 한창이다. 중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부 대개발의 주요 대상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발의 혜택이 포도알 같은 눈망울을 가진 위구르족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줄 수 있을까. 가오창고성에서 만난 이슬람식 장신구를 팔던 그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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