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터키는 지중해 특유의 따가운 햇살, 코끝에 와닿는 상큼한 허브 향이 매혹적이다. 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끝이 없는 들판에는 밀이 하얗게 여물고, 진분홍 꽃잎을 단 유도화(협죽도)와 샛노란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만나는 터키 유적지를 순례하노라면 시간이 멈춰 버리는 듯하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1시간40분 걸려 당도하는 터키는 비잔틴 문화 유적이 가득하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는 솥을 뒤집어 놓은 듯한 반원형 건물과 뾰족한 연필을 거꾸로 꽂아 놓은 듯한 ‘첨탑’이 장관을 이룬다. 2000개가 넘는 이들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애잔한 소리가 이방인의 가슴을 적신다. 터키는 국민소득이 4000달러가 채 안 되고 빈부 차가 심하지만, 이슬람 신앙이 이들의 생활을 밝고 건강하게 지탱해 주고 있다. 터키인은 용맹스럽고 아이디어가 넘친다. 여행 중 무엇 하나라도 건져올 수 있는 곳이 터키다. ◆?該竪떡냄?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이스탄불??=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서쪽은 유럽 대륙에 속하고, 동쪽은 아시아 대륙에 속한다. 바로 실크로드의 종착지다. 유럽 쪽은 다시 좁은 바다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신시가지(베이올루)와 남쪽의 구시가지로 나뉜다. 이스탄불은 이렇게 세 갈래 바닷길로 나누어진 신비스러운 도시다. 이스탄불은 그리스·로마 시대로부터 1923년 오트만 제국이 무너지기까지 무려 1600년 동안의 수도이자 10여개 인류 문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이곳을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유럽 쪽 신시가지는 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외국은행, 대형 상점, 각국 대사관이 늘어서 있다. 황금 14t이 치장돼 있다는 유명한 돌마바흐체 궁전도 이 지역에 있다. 구시가지는 비잔틴 시대의 왕국과 문화가 꽃을 피웠던 곳으로 ‘신도 허물지 못한다’는 3중으로 쌓은 ‘콘스탄티노플 성벽’ 잔해가 남아 있고, 톱카프궁, 성소피아사원(현재는 박물관), 블루모스크, 이스탄불대학 등이 있다. 옛 영화를 생각하게 하는 대시장 ‘그랜드 바자르’가 성시를 이룬다. 아시아 쪽인 위스퀴다르는 터키의 옛 정취가 물씬 배어 있는 주거지역이다.
이스탄불 여행은 구시가지부터 시작된다. 이어 로마 신화에서 ‘암소가 빠진 곳’이라는 뜻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크루즈하며 선상에서 두 팔을 벌려 양 대륙을 맞잡으면 지구가 품 안에 들어온다. 천혜의 바닷길을 한바퀴 돌아 나오노라면 돌마바흐체 궁전이 바다에 떠있는 듯 다가오며,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과 화려하게 단장된 터키 부자들의 여름별장이 눈에 들어온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동안 탄성이 끊이질 않는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아시아 쪽인 위스퀴다르에서 유럽 쪽에 있는 직장으로 승용차나 혹은 배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이 우리에게 선물하고 간 터키민요 ‘위스퀴다르’가 문득 생각난다. 위스퀴다르에 살고 있는 처녀가 젊은 공무원을 사모하는 이 연가는 ‘위스퀴다르 가는 길에 비가 내리네’로 시작된다. 그 처녀는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내 님의 외투 자락이 흙탕물에 끌려도 우리 서로 사랑하는 데 누가 막으랴’라고 짠하게 노래한다. 공교롭게도 위스퀴다르를 찾던 날 비가 뿌렸다.
◆?行볼? 속 도시여행??=2000년전 예수 사후 그의 복음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로마로 전파된다. 당시 복음의 통로가 터키(성서명 소아시아)였다. 소아시아 닷소 사람 바울은 본래 이름이 사울로, 복음을 따르던 스테반을 돌로 쳐죽이는 데 동조하는 등 유대교 열심당원이었다. 그는 예수 제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향하던 중 환상으로 예수의 음성을 들은 뒤 크게 뉘우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다. 이때 예수가 이름을 바울로 고쳐준 것. 바울의 전도 여행지를 돌아보려면 터키 동남쪽 안타키아(성서명 안디옥)에서 시작해 에페스(에베소)를 거쳐 그리스 고린도로 향해야 하는데, 여건상 에페스에서 안타키아로 돌아가는 귀향길을 택한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에게해 연안 에페스는 로마시대 관공서, 목욕탕 등 대규모 유적들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이곳은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에베소 교회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바울이 제자를 교육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셀수스도서관(두란노서원)에 들어서니 바울의 사자후가 귓가에 쟁쟁하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가혹하게 처형했다. 그래서 박해를 피해 흘러든 곳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갑바도기아 기암괴석 지대였다. 괴레메 지역에만 1000개가 넘는 동굴집과 동굴교회가 있다. 365개 교회 중 지금 남은 것은 16개소. 일부 동굴교회에는 비잔틴 성화가 그려져 있다. 인근 카이막리 지역의 지하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처절했던 삶의 현장을 말없이 보여준다. 지하교회는 지하 100m(지하 20층)까지 땅을 파 내려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몸을 구부려야 다닐 수 있는 지하교회에서 초대교인들은 추위와 주림 속에서 얼마나 가슴 조이며 살았을까. 지하교회에서 다른 지하교회로 피신하는 통로는 무려 9㎞에 이르는 곳도 있다.
갑바도기아에서 바울의 고향 닷소로 가는 길은 타우루스 산맥을 넘고 끝없는 밀밭과 황무지를 지나간다. 소도시 닷소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밀애를 즐기던 곳으로 더 기억되는 듯했다. 마을 초입에는 바울의 흔적보다는 ‘클레오파트라 문’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바울의 집 터에 당도하니 깊은 우물이 있고, 유리 가리개 밑으로 기초석이 보였다. 기독교 대사도의 집이 이슬람 신앙에 가려 수백년 동안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최근 순례객들이 부쩍 늘어 생가 인근에 조그만 광장이 조성되고 있다. 바울의 집을 지나 도착한 안타키아. 이곳에도 초대 교회의 숨결은 살아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자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피해 모여든 곳이 그 유명한 ‘안디옥 공동체’다. 안타키아는 로마시대 3대 도시의 하나였음인지 도시는 허름하지만 로마 양식을 하고 있다. 도시의 동쪽 실피우스산 중턱에 굴을 파고 예배를 드린 ‘베드로 동굴교회’가 있다. 안타키아는 본래 시리아 땅이었는데, 1923년 터키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주민 투표로 터키 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 90%가 아랍어를 쓰며 그리스정교회(동방교회) 신자가 2500명가량 살고 있다. 무슬림 일색인 터키는 타 종교에 대해 가장 관용적이다. 한국의 모 개신교가 5년 전 옛 프랑스대사관 건물을 매입해 ‘안디옥 개신교회’를 세웠는데, 새로운 순례 명소가 되고 있다. 터키 동부와 이란·아르메니아 접경지역에는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해발 5165m의 아라랏산이 있다고 한다.
◆?墟陋阪ㅌ蕩汶ㅖ資퓰체냥?=터키 항공(02-777-7055)은 인천과 이스탄불을 잇는 직항편을 주2회(월·토요일) 운항하고, 오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한시적으로 목요일 항공편을 추가 운항한다. 대한항공도 주 2회(화·금요일) 취항한다. 세대항공여행사(02-756-6651), 현대드림투어(02-3014-2331∼5) 등 국내 대부분 여행사에서 이스탄불과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거나 그리스와 연계하는 터키 관광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현대드림투어의 경우 ‘터키 완전일주 9일’ 상품을 오는 17일, 24일 단 두 차례 선보인다. 가격은 성인기준 179만원대. 성수기(8월26일∼9월3일)는 199만원대로 오른다. 터키의 물가는 한국의 80% 수준이다. 기념품으로 보석류, 은제 그릇, 실크 목도리, 각종 토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꿀값이 저렴하고, ‘이블아이’라는 ‘성공·승리·번영’을 상징하는 터키석 액세서리가 인기상품이다. 파란색 바탕에 가운데 흰색과 검은색 동그라미가 들어 있는 이 유리제품은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 품목이 다양하다. 터키 음식은 빵과 고기가 주 메뉴이며, 상점과 거리 곳곳에 빵집이 즐비하다. 화폐는 ‘터키리라’이며 관광지를 비롯해 대부분 상가는 미국 달러를 받는다. 터키인들은 동양인들을 좋아한다. 한국은 혈맹관계여서 더욱 반긴다. 터키인을 만나면 “규나이든”이라고 외쳐 보라. 열이면 열, 웃는 얼굴로 “규나이든”하고 화답한다. ‘빛나는 아침’이란 뜻의 아침인사다. 하루종일 주고받을 수 있는 인사말로 “멜하바”가 있다. 인사말 하나로 터키인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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