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비 내리는 자스퍼(Jasper)에 도착하자마자 새벽부터 정신없이 자전거 두 대와 트레일러를 조립하고 자전거 취재시발점인 자스퍼 국립공원 톨게이트에 도착한다. 이제야 엉망으로 꼬여있던 일들이 순서대로 자리 잡히는 느낌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는 여행인지라 무형의 무엇인가를 꼭 얻고 싶은 마음으로 자전거 첫 페달을 힘껏 밟는다. 옐로우헤드(YellowHead)로 불리는 16번 고속도로는 서부 캐나다의 주요 산업도로라 간간이 지나가는 대형 트레일러는 자전거여행이 익숙지 않은 우리 부부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한 위협적인 존재다.
자스퍼 시내에서 밴프(Banff)시내까지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을 위험을 무릅쓰고 60킬로미터 이상의 다리품을 더 판 이유는 탈보트(Talbot)호수의 아름다움을 여행의 처음으로 장식하고 싶은 ‘사진쟁이’의 욕심 때문이었다. 아다바스카(Athabasca)강을 옆으로 거슬러 달리면 어느덧 잔잔한 에메랄드 빛 탈보트 호수와 빙하가 녹아 유입된 물로 얕은 잿빛으로 물든 자스퍼 호수 사이로 달린다. 두 호수가 끝날 즈음 우리나라 같으면 정자라도 자리 잡았을 법한 언덕에 오르니 두 호수가 환히 들어온다.
재미있는 것은 자스퍼 호수인데, 겨울에는 독립된 호수였다가 여름이면 아다바스카 강물의 유입으로 수면이 1미터쯤 높아지면서 아다바스카 강과의 경계가 없어지는 호수다. 두 호수를 뒤로하고 달리다 보니 동물 그림 아래 전방2킬로미터란 표지판들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니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자전거 전용도로인 갓길을 점거하고 풀을 뜯고 있는 엘크를 구경하느라 진을 치고 있다. 야생동물이 많으니 이곳은 서행하란 신호였다.
엘크는 구경꾼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치 않고 제 일에만 열심이다. 길을 건널 때도 잘 교육받은 유치원 아이마냥 좌우를 살핀 뒤 교통량이 적어지면 잽싸게 건너곤 한다. 정말 신기하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보기엔 야생동물 보호 거의 병적이다 싶을 정도의 캐나다 정부와 그에 못지 않은 관광객들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야생동물들이 고속도로 주위에서 죽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시야가 좁은 초저녁이나 새벽녘에 동물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자전거 탓에 간간이 듣게 되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를 각성제 삼아 한참 달리니 캐나디언 로키 제2의 도시인 자스퍼가 우릴 반긴다. 자스퍼는 1907년 철도건설과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라 그런지 여전히 도시의 반은 기차역사를 비롯한 버스정류장 등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반대편은 ‘서울옥’이라는 한국 식당들을 비롯한 낯익은 우리말 간판을 단 상가들,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정보센터가 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이 들끓는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조용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도시다. 식량을 구하고 자스퍼(Jasper)를 한바퀴 돌다 만난 왠지 모르게 친숙해보이는 일본인 자전거 여행자와 함께 자스퍼 근교의 야영장으로 향한다. 이 일본인 친구는 일본 어드벤처 자전거클럽의 회원으로 한달 전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출발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2년 동안 남미 끝까지 내려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영어로 의사 전달이 거의 불가능하여 미리 자기의 계획을 작성한 영문 번역서를 보여주며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전한다. 일본인 친구와 간단한 술자리를 파할 때쯤, 약한 주량 탓인지 추운 로키의 밤 날씨 탓인지 사고가 잠시 멈춘 듯한 몽롱함으로 침낭에 몸을 밀어 넣는다.
자스퍼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다는 일본친구와 다음야영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전거 여행도로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도로상태와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는 93번 도로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밴프 사냥에 나선다.
93번 도로에서 사잇길인 93A도로를 교통량이 적을 것 같은 생각에 접어들었다가, 교통량이 적은 곳은 그만큼 길이 험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우치고 다시 93번 도로로 되돌아온다. 밴프까지의 길은 세개의 고개를 넘어야하니 어디든 전체적으론 오르막을 피할 순 없다.
우리 부부는 산행에만 익숙하였지 자전거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무엇이 적당한 장비인지를 모르고 필요하겠다고 생각된 것들을 모두다 자전거 뒤에 연결된 트레일러에 담아 실어서 무척 어려웠다. 더욱이 촬영을 위한 비디오 스틸카메라는 하중을 더욱 가중시켰다.
고갯길에서 한참 땀을 빼고있는데 간단히 짐을 꾸린 독일 중년 부부가 얄미운 표정으로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쉽진 않을 거’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앞질러간다. 힘이 빠진다. 한참의 다리 품을 팔아 도착하는 곳이 93번 도로와 93A 도로가 다시 만나는 아다바스카(Athabasca) 폭포다. 콜롬비아 빙원에서 녹아 내리는 물이 만드는 폭포의 낙차로 생긴 차가운 물안개로 길손들은 땀을 식히기엔 아주 그만이다. 아다바스카 폭포를 벗어나자마자 날씨는 금새 흐려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제법 어두운데도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허니문호수야영장은 나타나지 않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대신한다. 번개 치는 고갯마루를 비에 젖은 채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지만 급한 마음에 무척 속도가 붙는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다 되어서야 허니문호수야영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야영장의 이름과는 너무도 안 어울리는 축축한 밤을 지내야만 했다. 일본인 친구가 우리를 깨운다. 간밤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이제야 우리를 찾았단다.
비 때문에 오늘은 하루 쉬겠다 하니 그 친구도 맞장구를 치며 우리와 함께 하루를 머물겠단다. 끝없이 내리는 비로 계속 젖어만 가는 텐트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동 취사용 캐빈으로 옮기니, 어제 우리를 앞질러 간 독일 부부가 먼저 자리를 잡고있었다. 비가 멎기만 기다리기도 지겹고 해서 일본친구와 야영장 주위에 흩어져 있는 젖은 장작으로 불을 지펴보지만 연기만 나고 이내 꺼져 버린다.
독일 부부는 이상한 동양인들의 행동이 비합리적으로 보였는지 시큰둥한 표정이다. 일본친구가 자신의 기록용 노트를 다 태우고 난 뒤, 연기가 가시고 난로 위가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불 주위로 다가오더니 이내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한다. 참으로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다음날 비는 멎는다. 한 지붕 아래서 하룻밤을 지낸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같이 포즈를 취하고 각자 길을 떠난다.
전설적인 일본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를 무척 닮은 일본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긴 여정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야영장을 지나서 바로 보이는 조그만 리조트가 선왑타(Sunwapta) 폭포 입구다. 1킬로미터 정도를 더 들어가면 크게 갈라진 화강암 틈새로 물이 쏟아지는 선왑타 폭포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이곳은 폭포라기보다는 차라리 협곡이다. 2킬로미터나 되는 이 협곡은 아다바스카로 이어진다. 폭포를 뒤로하고 달리니 간밤에 내린 비가 산허리에선 눈으로 내렸는지 산등성들이 아침 안개를 베일 삼은 하얀 드레스의 수줍은 신부 같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비온 후 산은 어설픈 사진쟁이를 천의 얼굴로 괴롭힌다. 푸른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물들며 더욱 높아만 가고 그 아래로 나이가 지긋한 중년들로 구성된 팀이 우리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밴프에서 자스퍼로 가는 길인데 자신들은 커다란 트레일러가 식량과 장비들을 지원한다면서 우리의 짐을 보곤 걱정을 해준다. 어느 정도 여유도 있어 보이는 평범한 중년들이 사서하는 이 고생이 아름다워 보였다. 또 가던 길을 멈추고 도로변에 비로 젖은 장비와 옷가지를 널고 있는 영국 젊은이들에게서는 여유로움을 본다.
다이아댐(Diadem)봉 전망대에서는 콜롬비아 빙하의 정수리가 그 앞을 호위하고 있는 영봉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전방을 잔잔히 흐르는 수면에 비치는 영봉들의 반영은 또 한번 사진가 부부를 들뜨게 하기 충분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할 빛과 색의 요술을 필름에 담고 싶었지만, 오늘 넘어야 할 캐나디언 로키에서 가장 어렵다는 선왑타 고개를 향한다. 선왑타 강 위를 잣대로 그은 듯한 길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빙하로 덮인 산들을 주위에 두고도 그것에 감탄하기보다는 쓸데없이 많은 짐을 준비한 무지에 한탄하며 자전거를 끌고 그 고개를 올라야 했다.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오르막을 쏜살같이 지나는 자동차들이 울리는 가벼운 격려의 경적 소리도 고달픈 여행자들의 귀엔 짜증 나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고개 중턱을 지나다 만난 여러 갈래 폭포수가 보기만 해도 시원한 탱글(Tangle) 폭포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힘을 모아 막바지 오르막을 오르니, 콜롬비아 빙원이 저 아래로 펼쳐진다.
콜롬비아 빙원은 나의 얕은 식견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빙하의 운동으로 형성된 특이한 지형이었다.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의 협곡에 가까운 선왑타 강의 좁은 수로를 제외하곤 사방 둘러싸인 새의 둥지 형상을 한 지형으로, 중국 고대 전쟁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곳이다. 오르막의 보상을 내리막의 편안함으로 받고 내려가니 어느새 지형은 서부영화의 흙먼지 날리는 황야로 변한다.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모레인 언덕 너머로 콜롬비아 빙원 중 유일하게 관광용 빙상차로 접근이 가능한 아다바스카 빙하가 서늘한 기운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빙상차를 탈 수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콜롬비아 빙하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빙하란, 눈이 내려 녹지 않고 쌓여 있다가 30미터 이상이 되면 얼음으로 변하여 위에서 누르는 압력으로 강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말하는데, 움직임은 느리지만 그 힘은 새로운 지형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기온의 상승으로 지금 콜롬비아빙원의 크기가 많이 줄었지만 빙하기엔 그 세력이 북으론 자스퍼, 남으론 캘거리까지 뻗쳤다고 한다. 캐나디언 로키의 특이한 형태도 빙하기동안 빙하의 운동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아직도 아다바스카 빙하 안쪽에서 빙하의 발까지 5미터 정도의 거리를 흐르는 데는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은은한 달빛 반짝이는 빙하를 볼 수 있는 야영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다지 어렵지 않는 고갯길을 오르니 자스퍼와 밴프의 경계인 선왑타 고개다. 길가를 수놓은 키 작은 고산 식물들을 옆으로 하고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니 신부의 긴 면사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브라이덜 베일(Bridal Veil) 폭포가 보이고, 그 우측으론 옥빛 하늘 아래로 사스카츄완(Saska-tchewan) 강 하구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때 마침 몰려온 일본인 관광객 틈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갑자기 떨어지는 고도를 줄이기 위해 도로를 길게 휘어 만든 빅밴드를 내려오는데 앞 타이어가 이상하다. 펑크가 난 것이다. 수선구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때우기 애매한 곳이어서 2시간 여를 고생하고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가야할 길은 아직 먼데.
하는 수 없이 구걸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전거를 가지고 있을만한 자동차에 타이어를 들고 흔들었다. 30분 정도를 흔드니 부담 없을 정도로 낡은 차 한대가 다가선다. 여분의 타이어는 없다면서 자신들의 자전거 타이어를 선뜻 뽑아준다. 통하지도 않는 말로 고마움을 전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쫓아 정신없이 달렸다.
우리 그림자 길이가 키의 세배가 다 되어서야 전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야영장에서 짐을 풀고 옆쪽 캠프 사이트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날씨변화가 심한 로키에는 속담이 하나 있다. ‘아침에 천막에서 나왔는데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들어가 10분만 있다가 나와라.’
어제만 해도 구름 한점 없던 옥빛 하늘이 잿빛으로 변해있다. 남은 며칠만 더 맑아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윌슨(Wilson) 산을 좌로 돌아 달리니 자전거로 로키를 지나는 길손들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 사스카츄완 크로싱(Saskatchewan Crossing)이 우리를 반긴다. 날씨 때문에 생길지 모르는 만일에 대비하여 식량을 보충하고 주유소에서 2리터의 휘발유를 달라고 하자 주유원은 익숙한 솜씨로 연료통을 채운다.
에드몬튼으로 흐르는 호우스(howse)강을 건너 미스타야(Mistaya) 강을 거스르는 오르막길을 달린다. 눈 덮인 영봉들의 수려함에 무심코 카메라를 잡아 보지만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는 같지 않을 거란 지레짐작으로 손을 놓는다. 고개를 쉬엄쉬엄 오르다 만난 스위스의 젊은 커플의 자전거 앞에 달고 있는 태극기 배지가 무척 반갑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자전거 여행중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가 기념으로 구한 것이란다. 고마운 마음에 미숫가루 탄 것을 대접하니 마시는 시늉만 하고는 맛이 있다고 한다.
빗소리로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날씨가 다시 좋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로키의 마지막 난관인 보우고개(bow pass)로 향한다. 사진 찍을 일이 없으니 달린다는 것 자체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오르막길이 급해지면서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걷기가 더 편해진다.
산노래를 숨찬 호흡에 맞춰 다 부르고 난 뒤에도 한참을 더 올라 보우고개 꼭대기에 도달한다. 가쁜 숨을 가다듬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 같은 빗줄기가 온 대지를 적신다. 내리는 빗줄기를 피할 길은 보우호수를 향해 내달리는 수밖에 없다. 에메랄드빛의 호수로 유명한 보우호수는 비에 젖어 그 오묘한 빛을 잃고 있었지만 카누를 즐기는 중년부부의 여유와 은은함이 그 빛을 대신하고 있다.
로지 근처에서 간신히 비를 피해 라면을 끊여 먹고 가지고 간 모든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레이크루이즈(Lake Louise)로 향한다. 끝없이 내리는 비에 속옷까지 젖어 든다.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 손가락들이 마비되는 듯하다. 날씨만 맑았으면 한참을 머물렀을 듯한 곳에 아쉬움만 남긴 채, 계속된 내리막길을 따라 레이크루이즈까지 달린다.
레이크루이즈 야영장의 샤워장에서 묵은 피로를 씻어내니 이제야 다시 인간이 된 기분이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레이크루이즈는 에메랄드빛이다. 빙하의 침전물에 의한 반사로 빛나는 이 호수는 계절과 수심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한다고 한다.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샤토레이크루이즈(Chateau Lake Louise)호텔은 1888년 조그마한 움막으로 시작하여 여러 번의 증 개축을 거쳐 지금의 우아한 현대식 호텔로 이르렀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과 신이 만들어낸 자연이 가장 이상적으로 만난 곳이 레이크루이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레이크루이즈를 뒤로하고 교통량이 많은 1번 고속도로를 피해 1A번 고속도로를 따라 마지막 밴프 사냥에 나선다. 전체적으로 내리막인 굴곡 없이 평탄한 길을 따라 좌우로 빽빽이 들어찬 참나무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베이크 크릭 샤롯(Bake Creek Chalets)과 캐슬(Castle)산을 지나니 몇년 전 산불로 타버린 앙상한 자작나무숲이 앞서본 참나무 숲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1A번 도로가 끝나고 1번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마침내 귀착점인 밴프가 한눈에 환히 들어온다.
로키 제일의 관광 도시답게 깔끔히 장식된 안내용 표지와 휘장들이 오랜 여행에 지친 길손을 반긴다. 이 나라에서 지내면서 어느새 우리부부 최고의 특별식이 되어버린 켄터키프라이드치킨으로 그 동안 주렸든 배를 다시 채우고, 철도용 터널로 계획되었다가 취소된 까닭으로 이름 지어진 터널마운틴(Tunnel Mountain) 야영장에서 마지막 짐을 푼다. 기나긴 이번 여행의 자취로 남을 필름들을 정리하다 보니 신이 인간에게 베푼 자연 중 가장 아름다운 캐나디언 로키에서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쉽진 않았을 시간동안 내색도 않고 묵묵히 참아준 부인에게 감사하며 긴 여정을 접는다.
<글 김범수 >
캐나디언 로키의 두 축인 자스퍼와 밴프를 잇는 하이웨이는 다양한 동식물들과 수려한 자연경관 때문에 전세계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7월초에서 8월말까지가 자전거여행으로 가장 알맞다. 캐나다 서쪽 관문인 밴쿠버에서 밴프든 자스퍼든 여행의 시작점으로 정한 곳까지는 그레이하운드버스나 기차로 이동하여야 한다. 버스는 기차에 비해 여행시간이 조금 길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더 유리하다.
비행기로 캘거리까지 가서 버스로 밴프까지 가는 데는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린다. 가격은 비싸다. 자전거는 자스퍼의 대여점에서 빌려도 밴프의 대여점에서 반환이 가능. 짐은 많은 여행자들이 자전거의 앞 뒤바퀴에 부착하는 사이드배낭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식량과 연료는 자스퍼에서 100킬로 떨어진 사스카츄완크로싱과 밴프에서 8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레이크루이즈에서만 구할 수 있다. 밴프에서 자스퍼 사이에 15개쯤의 야영장이 있는데 시설이 거의 완벽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곰, 특히 음식물은 꼭 야영장에 설치되어 있는 음식저장과에 넣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곰이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1년에 두세간씩 생기는 곰의 습격은 대부분 부주의한 음식보관 때문이다. 날씨는 건조하므로 립크림을 비롯한 얼굴을 보호할 수 있는 자외선 차단제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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